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기독교는 효도를 강조합니다

한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5월에는 가정과 관련된 여러 다양한 행사들이 있습니다. 어버이날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이 날에는 갖가지 행사를 마련하여 경로효친 사상을 고양합니다. 미국에서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있지만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Parents' Day’가 따로 있는데, 7월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그리고 ‘조부모의 날’(Grandparents' Day)도 있는데, 노동절(Labor Day) 지난 첫 일요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특히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마음이 유별나기 때문에 흔히들 1년 365일이 다 어린이날이기 때문에 별도로 어린이날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6월 둘째 일요일을 ‘Children's Day’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에만 있는 것이 있는데, 5월 21일에 지키는 ‘부부의 날’입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21일을 ‘부부의 날’로 제정한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민족이든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의 축을 이루는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에서 효(孝) 사상을 강조하는데 있어서는 나라마다 다소 결이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가족의 유대(solidarity)를 중시하는 동양에서는 효를 강조하며, 한국도 그 점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효도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효를 강조하는 종교를 들라면 유교를 첫 손가락에 꼽습니다. 유교의 경전 중의 하나인 『효경』(孝經)은 효도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 만큼 ‘효’ 하면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종교가 유교입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유명한 구절이 바로 이 책의 핵심내용입니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들을 상하지 않고 잘 보전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효는 만 가지 행동의 근본이다”(孝卽萬行之本)라고 할 정도로 유대교가 효를 강조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는 유교보다 더욱 철저하게 효를 강조합니다. 혹자들은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비난하며, 심지어 기독교를 ‘호로자식의 종교’라고 폄훼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모나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끔찍이 위하면서도 육신의 어버이는 별로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기독교는 그 어느 종교보다도 부모님께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으뜸가는 계명이 바로 십계명인데, 하나님은 부모공경을 이 십계명에다 명시하셨습니다. 열 가지 계명 가운데 1~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5~10계명은 인간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 중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계명은 인륜에 관한 계명 중 맨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부모의 권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두 돌판에 십계명을 기록하실 때 1~4계명을 한 돌판에, 그리고 나머지 5~10계명을 다른 한 돌판에 새기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부모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동등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비중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신약시대에는 문자적으로 적용되진 않지만 구약성경을 보면 소름끼칠 만큼 효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명기 21:18, 21)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정말 무시무시한 말씀 아닙니까. 성경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와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꼭 같은 무게의 중형으로 다스리라고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제가 알기론 유교에서 불효자를 죽이라고까지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유교보다도 더 철저하게 효도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고르반’(Corban, 마가복음 7:6-13)의 예를 들어 부모공경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셨으며, 어릴 때부터 몸소 효성스러운 자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누가복음 2:51). 무엇보다도 십자가 위에서 지난(至難)한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님의 노후를 요한에게 부탁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기독교에서 배교보다 더 큰 죄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사도 바울은 짐짓 불효가 배교 이상의 악한 행위임을 언급함으로써 효도의 소중함을 은근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부모공경의 계명은 약속이 따르는 첫 계명임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우리 모두 효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만사형통의 복과 건강(장수)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에베소서 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