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우리의 호위무사(護衛武士) 되시는 하나님



야곱의 인생은 전체적으로 보면 복된 인생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집트 왕인 바로 앞에서 자신의 나그네 인생길 130년 동안 “참으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노라”(창세기 47:9)고 고백한 걸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형 에서는 자기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에게 복수를 벼르고 있었고,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의 권고로 잠시 외삼촌 집으로 멀리 피신을 하게 됩니다. 잠시 피신을 한다는 게 그럭저럭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야곱은 대가족을 거느리는 어엿한 가장이 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주셔서 재산도 꽤 많이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외사촌들이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아 거부가 되었다고 생떼를 부리면서 노골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했고 외삼촌 라반도 평소와 달리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그곳을 떠나라 하시므로 야곱은 이때다 싶어 야반도주를 감행하게 됩니다. 뒤늦게 이것을 알아차린 외삼촌 가족들이 야곱 일행을 추격하자 일대 위기를 맞이하지만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일체 아무 말도 못하도록 함구령을 내리심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는가 싶었는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더 큰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에서가 병사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전갈을 듣게 됩니다.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야곱은 심히 두렵고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과 짐승을 두 떼로 분산시켰습니다. 여차하면 한 떼라도 무사히 피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그런 다음 홀로 남아 사생결단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씨름을 한 후 ‘이스라엘’(하나님의 왕자)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그럼에도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에서가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에서가 그에게 달려와 반갑게 허그하며 피차 울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올 법한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기도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게 가장 확실한 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맥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미 하나님은 그가 외삼촌 댁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와 동행하며 그를 호위해주셨습니다. 외삼촌의 추격의 위기를 벗어나 계속 길을 가고 있을 때 야곱은 그의 일행을 호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게 됩니다(창세기 32장). 그는 그 사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군대’라고 하면서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은 ‘두 떼’ 또는 ‘두 진영’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야곱이 본 하나님의 사자들이 두 그룹으로 편대를 이루어 앞뒤에서 혹은 좌우에서 야곱 일행을 에스코트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성경학자들은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 천사들은 한 마디로 야곱 일행의 경호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에서의 복수심이 끝내 풀어지지 않아 야곱 일행에게 어떤 공격적인 행위를 가했다고 가정할지라도 이 하나님의 사자들은 그들의 공격을 일거에 물리치고 야곱 일행의 신변을 보호해주었을 것이라는 것은 결코 지나친 억지추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록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늘 천사들을 보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개개인을 돌보는 ‘수호천사’(guardian angel) 사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출옥하여 마가 요한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에서 기도하던 자들이 베드로인 줄 믿지 못하고 아마도 ‘그의 천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12:15).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섬기도록 필요한 때마다 부리시는 영입니다(히브리서 1:14). 하나님은 당신의 사자들을 성도들의 호위무사(護衛武士)로 사용하십니다.

호위무사란 쉬운 말로 경호원입니다. 위험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가까이에서 사주경계하며 지키는 사람으로 예전에는 임금이나 지체 높으신 분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때로 황송하게도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호위무사가 되시기도 합니다.

시편 28:7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방패는 shield입니다. 한국에서는 누구를 비호할 때 ‘쉴드친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상대가 잘못된 줄 번연히 알면서도 알량한 이득과 후일을 위한 노림수로 짐짓 호위무사 노릇을 자처하기도 하고 무리하게 쉴드를 치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자행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Enough is enough!’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저질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순전한 마음으로 호위무사도 되시고 쉴드를 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녀들 편을 드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겠다”(창세기 12:3)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별칭은 보혜사(保惠師, παράκλητος, 파라클레이토스)입니다. 이 말은 παρά(곁에)와 κλητος(부름을 받은 자)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말로서, 시중을 들기 위해 가까이에 부름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어떤 영어성경은 원래의 의미에 충실하게 waiter(사환, 심부름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좀 송구스럽긴 하나 그게 원래의 의미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들을 위해 이토록 자상하고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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