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남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절에 모압과 암몬이 에돔 족속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침공해오자 국가의 존망이 걸린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온 백성들에게 금식할 것을 공포한 후 예루살렘 성전 앞에 몰려온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20:12)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유다도 100만 이상의 병력을 갖춘 나라였지만 엄청난 수로 밀려오는 연합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누란지위(累卵之危)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할 길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부왕(父王) 아사 왕을 본받아 우상을 척결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 왕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한 가지 실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 결혼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아합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후로 맞이하여 온 나라를 우상의 소굴로 만든 악명 높은 왕이었습니다. 이러한 처사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선견자 예후를 보내어 그의 잘못을 지적하시며 엄중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그가 당한 재앙의 원인이 무엇이든 여호사밧 왕은 어쩌면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위기의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그 분을 신뢰하며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여러 구체적인 사례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곤경은 하나님의 기회이다.”(Human predicament is god's opportunit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왕과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한 레위인을 성령으로 감동케 하시사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십니다. 그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 전쟁은 나 여호와께 속한 전쟁이니 너희들은 싸울 것 없이 그저 항오를 이루고 서서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라. 그리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당당히 그들을 향해 나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

이 메시지를 전해들은 왕과 백성들은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했고 레위인들은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여호사밧 왕은 출전하는 군인들을 향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할 것이라는 말로 격려를 한 후 찬양대를 조직하여 군대 앞에 서서 행진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양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찬양이 시작되자마자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복병을 일으켜 모압 연합군을 혼란에 빠뜨려 피차 살육하게 하심으로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고 스스로 전멸하게 됩니다. 그 후에 전리품을 거두는데 얼마나 많았던지 전리품을 거두는 데만도 꼬박 사흘이 걸렸습니다. 그들은 이 골짜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곳 이름을 ‘브라가 골짜기’(Valley of Beracah) 즉 ‘송축의 골짜기’로 명명했습니다. 요즘 ‘브라가 찬양단’이라는 이름을 흔하게 접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사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여호사밧이 강력한 연합군을 전멸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가자 주변 국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해피엔딩 스토리입니다.



사면초가가 되어 도저히 해쳐나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혔을 때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말고 제 5의 방향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원치 않는 삶의 위기가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의 눈길로 우리를 은근히 바라보시며,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세밀하게 귀를 기울이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휘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신앙의 반대말은 당연히 불신앙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내용상 신앙과 상반되는 다양한 어휘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염려와 두려움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염려와 걱정이 많았을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 목사님은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요,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경제 대공황 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유명한 연설로 국민들을 격려하며 안심시켰다고 합니다. Virginian인 우리가 특히 가을 철 단풍놀이로 즐겨 찾는 Skyline Drive는 장장 240마일에 달하는 Blue Ridge Parkway 중 한 자락인데, 이 큰 공사가 바로 대공황기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역사의 한 토막입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대체의 법칙’(Law of Substitution)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동시에 상반된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법칙입니다. 일례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체하면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할 곳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을 적용해서 두려움을 담대함으로, 염려를 평정심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신앙적인 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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