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밥’하고 설교하세요



저는 언젠가 기독교 신문에서 『목사님~ 밥하고 설교하세요』(장재일 저)이란 제목의 책 광고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을 읽어보았더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우선 이 책 제목에서 ‘밥’은 BoB를 소리나는 대로 음역한 것인데, ‘Background of Bible’의 두음(頭音)들을 모은 약자로서 '성경의 배경’이란 뜻이었습니다. 아주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배경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설교를 한다면 성경 본문(text)의 의미를 충분히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 성경 본문의 배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설교가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지만, 솔직히 설교 외에도 다양한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목회자의 입장에서 설교 한 편을 준비할 때 성경 본문의 다양한 배경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배경이라고 하면 단순히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리적 배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국내 정황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국가들의 정황과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까지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컨텍스트(context), 성경 각권(各圈)의 컨텍스트, 단락 안에서의 문맥 등을 고려해야 하며, 심지어 문학적인 장르까지도 고려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과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에게는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역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모든 사항들을 다 고려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는 맥락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진리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진리는 아마도 구원에 관련된 진리일 것입니다. 이 진리에서 벗어난 ‘맥락 없는’ 설교는 자칫 이단의 소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 구세주)로 고백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진리에서 벗어나면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에는 자칫 이러한 진리와 상반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씀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정말 고민스럽습니다. 저 자신부터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저뿐만 아니라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범위를 좁혀 말한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그런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나는 천국에 갈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만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야고보서 저자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야고보서 2:10-11)고 말씀하였고, 또한 사도 바울도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라디아서 3:10)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all or nothing’입니다. 전부가 아니면 무(無)라는 뜻입니다. 이런 기준의 잣대를 들이댈 때 과연 누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복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기에 우리는 그 분을 믿음으로써 그 분의 공로를 의지하여 거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교차점에서 죄를 간과(看過)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와 함께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절묘한 한 수 즉 ‘신의 한 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는 게 고민거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토록 중요한 영적 진리에 있어 예수님이 일관성을 놓치고 계실까요? 사실은 예수님이 일관성을 놓치신 게 아니라 우리가 전후 문맥을 무시하고 ‘맥락 없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태복음 7:15-27의 단락(paragraph) 속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단락에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접근하나 그들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가 숨어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열매를 보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만 보면 대단한 기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날에 그들은 그러한 공적을 내세우지만 예수님은 밝히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선언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대로 행하지 아니한 자들이므로 사상누각처럼 심하게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들을 삼가 조심하라고 경계하고 계십니다.

전후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한 절만 뚝 떼어서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이단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입니다. 우리 설교자들도 문맥을 떠나 설교하다 보면 자칫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는 회중들이 “그렇다면 당신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요?”라고 반문할 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할 수 있는 대로 ‘밥’을 잘하고 설교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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