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기도 적금



“기우제(祈雨祭)는 언제까지 지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비올 때까지!”입니다. 이것은 넌센스 퀴즈이지만 기도에 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퀴즈입니다. 실제로 미국 인디언들은 일단 기우제를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도 기도는 응답될 때까지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응답의 유형은 반드시 Yes!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No!가 기도응답일 수 있고, 때로는 Hold on!일 수도 있습니다. 마이크에 비겨 말한다면 On, Off, Stand by의 스위치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유형의 응답이든 진실하게 기도하는 한 기도응답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자칫 기도를 잠정적으로 멈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꾸준히 기도하기를 원하셔서 짐짓 응답을 지체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가 요구되며, 기도를 노동에 비유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과부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안하무인(眼下無人) 재판장의 계속되는 무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끈덕지게 요청하는 바람에 재판장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내용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베푸신 의도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누가복음 18:1).

또 누가복음 11장에는 허기진 채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이웃집 친구 집에 가서 음식을 구하는데 이미 잠자리에 들어 정말 귀찮지만 친구가 하도 강청(强請)하니 할 수 없이 일어나 음식을 준다는 주님의 비유도 나옵니다. 이 비유도 역시 응답받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누가복음 11:8)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언젠가 신앙수련회 때 강사님이 “기도를 저축하라”는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 말씀이 새록새록 생각나곤 합니다. 우리가 흔히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을 곰곰이 새겨보면 기도가 당장에 응답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의 적금’이라는 말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허공을 맴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 속에 한 푼의 누수(漏水)도 없이 고스란히 저축이 되는 것입니다. 적금은 일정액이 쌓이면 언젠가는 목돈으로 찾을 수 있는 저축 방법입니다. 혹 내가 찾아 쓰지 못할지라도 그 누군가가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해석상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는 기도의 적금과 관련해 여리고성의 점령을 하나의 예화처럼 인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엿새 동안 매일 한 바퀴씩 성 주위를 돌고 이레째는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바퀴를 돌 때 신호에 맞춰 일제히 외쳤더니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만일 그들이 열두 바퀴만 돌고 포기했더라면 그 성이 무너져 내렸을까요?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자 불치병인 문둥병이 거짓말처럼 깨끗이 나아 피부가 마치 어린 아이 피부처럼 되었다고 했는데, 만일 그가 여섯 번으로 끝내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이 끊는 비등점은 섭씨 100도입니다. 물리학에서 어떤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바뀔 때의 온도나 압력을 '임계점(臨界點, critical point)'이라고 합니다. 액체가 기체가 되는 비등점이나 고체가 되는 빙점 즉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대나무는 씨를 뿌리고 5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면 싹이 나고, 일단 싹이 나면 하루에 70cm씩 자라기 시작해 순식간에 30m의 거목으로 성장합니다. 그 5년 동안 온 사방에 수십 미터나 되는 뿌리를 뻗어놓으며 견고하게 내실을 다져놓았기 가능한 일입니다.



수년 동안 광맥을 찾아 수고하다가 끝내 포기하고 헐값에 팔아넘긴 광산에서 불과 한 나절 만에 광맥을 만나 횡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석공의 수백 번의 망치질에도 끄떡하지 않다가 마지막 망치질에 쫙 하고 갈라집니다. 그러나 바위를 가른 것은 마지막 일격이 아니라 그 전까지 바위를 두드린 수백 번의 망치질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장수시대를 맞아 노년의 건강과 관련해 특히 ‘근육의 저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매일 꾸준히 걷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싶지만 그 하찮아 보이는 운동으로 허벅지 근육을 조금씩 조금씩 저축해 놓으면 노년을 비교적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걷는 것과 기도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돈이 들어가지 않으며, 다만 시간과 노력만 투자하면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놀랍다는 점도 닮은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나아만 장군이 경험한 삶의 기적은 꾸준한 ‘기도 적금’의 산물임을 기억하고, 기도응답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더라도 꾸준히 차곡차곡 기도를 쌓아가는 일에 힘쓰기로 다함께 다짐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