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예언적 과거(prophetic past)



성경을 읽다 보면 시제(時制)가 이상하다 싶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유대인들과 언쟁을 하시는 중에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시비를 걸고 나옵니다. “네가 아직 오십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냐?” 그러자 예수님이 정색을 하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5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여기에서 일반적으로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내가 있었었느니라(before Abraham was born, I had been).”는 대과거(大過去) 시제가 문법적으로 맞는 시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짐짓 현재형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영원하신 예수님의 선재성(先在性, pre-existence)을 은연중에 천명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시제와 관련해 이 외에도 독특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성경학자들이 ‘예언적 과거’(prophetic past) 내지는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라고 명명한 시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표현하는 기법으로서,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표명(表明)할 때 사용됩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또는 예언자들을 통해 미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확신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사야 55:8-11)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않고 땅을 적셔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말씀은 그냥 허공에 맴돌다 사라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닙니다. 그 분의 약속과 예언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당신 자신이 하신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그 분만이 미래의 일들을 과거형으로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Yes)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제 한두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호수아 1-4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지중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입성과 정복의 대업을 이어받은 여호수아의 심적인 부담은 능히 헤아리고도 남습니다. 불세출의 지도자인 모세조차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맘고생과 몸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을 곁에서 지켜보아왔던 여호수아로서는 이제 그의 어깨에 지워진 짐이 천근천만 무거운 중압감으로 짓눌러왔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은 용기와 확신을 주시기 위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라”고 ‘예언적 과거’의 표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결코 ‘영혼 없이’ 그냥 입술로만 하신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주시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은 여리고성 점령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하나님은 아직도 여리고성 주위를 채 한 바퀴도 돌지 않았는데 여리고성과 그 성의 왕과 용사들을 ‘이미’ 그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I have delivered Jericho into your hands, along with its king and its fighting men)”

이 외에도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이사야 9:6을 비롯해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예언적 과거’ 시제를 사용해 하나님의 예언의 엄위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예수님의 재림의 예언들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으며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