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소위 ‘꼰대’를 변호합니다!



한국 말 중에는 영어로 옮길 적절한 단어(counterpart)가 없어 발음나는 대로 음역(音譯)을 해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恨) 많은 한국인 특유의 분노증후군인 ‘화병’(Hwabyeong), 그리고 ‘갑질’(gapjil)과 ‘재벌’(jaebeol, chaebol)과 같은 단어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꼰대 담론(談論)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영국의 BBC 방송에서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kkondae’라고 음역해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저는 나이로 봐서는 영락없는 ‘꼰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단어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때로는 피해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솔직히 BBC 방송의 꼰대의 정의 중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옹고집쟁이라는 정의에는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꼰대의 개념은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그러다보니 거기에 옹고집쟁이의 면모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맥락 없이 두루뭉술하게 일반화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꼰대의 특징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 ‘나 때는 말이야’입니다. 자신의 과거 이력을 내세우면서 이렇게 서두를 꺼내는 장황한 충고는 허세로 가득 찬 ‘잔소리’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젊은 층에서는 ‘Latte is a horse’라는 조롱어린 말투로 은근히 비꼬기도 합니다. 최근 방영된 <꼰대인턴>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는 한때 못되게 굴었던 꼰대 부장을 부하직원으로 맞이하면서 갑을(甲乙)이 뒤바뀐 복수극을 그리고 있고, ‘꼰대 라떼’라는 곡이 OST로 삽입되기도 했지만, 자칫 어른들은 도매금으로 무조건 타기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바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된 배후에는 소위 ‘꼰대’ 세대의 희생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아버지 세대를 다룬 영화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월남전에 참전한 용사들, 독일에서 초인적인 고생을 견디며 분투했던 파독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위시하여 나라와 가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한국 산업화의 초석을 놓았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후세대들은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경제적 부요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듯 거저 주어진 양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꼰대 세대들의 이러한 헌신과 공헌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른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공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부모공경이 십계명 중 인륜에 관한 계명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꼭 부모의 도리를 다 해야만 공경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 듯이 어른도 반드시 어른 노릇을 다 해야만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늙음도 어떤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부모나 어른이 마땅히 할 바를 감당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아무렇게나 처신하면서 대접받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좀 부족하더라도 나름 노력하고 애쓰는 한 부모와 어른들은 마땅히 공경을 받아야 합니다.

(레위기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잠언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노인공경과 여호와 경외가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노인공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윗것들이 아랫분들을 섬긴다”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한 적도 있는데, 오늘날 노인은 뒷방 늙은이나 노추(老醜)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성가시고 누추하며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 늙어봤니, 난 젊어봤어!”라는 말에서 읽을 수 있듯이 노인은 연륜과 경험이 있는 분들로서 젊은이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고(’考) 자는 늙은이 ‘노’(老) 자에서 파생한 한자입니다. 노인들은 경험이 많은 만큼 생각이 깊은 자들입니다. 사회에서 고문(顧問)이나 자문역(諮問役)을 주로 연장자들에게 맡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라는 시편 119:100의 말씀은 노인의 지혜를 넌지시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경험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경험과 지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경륜이 있는 자의 한 마디 조언이 시행착오를 줄여줌으로써 소중한 시간을 절약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멘토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꼰대’의 부정적인 특징들을 하나씩 개선해나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기존 지식과 경험을 절대시하는 데서 벗어나 사고의 유연성을 가짐으로써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일컫는 ‘나일리지’를 무기 삼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려는 아집을 버려야 합니다. 논리에서 밀리면 권위와 서열로 억압하려 하지 말고, 불치하문(不恥下問) 즉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는 옛 선현들의 말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주름살과 함께 품위를 갖추면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된다”는 빅터 위고의 말을 기억하고 품위를 갖추도록 힘써야 합니다. 품위의 품(品) 자는 입 구(口) 자가 세 개 합해진 형상입니다. 즉 언어의 격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온갖 막말을 난발하면서 ‘아무 말 잔치’를 벌이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높다고 다 명산이 아니듯 나이가 많다고 반드시 어른은 아닙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보다는 얼마나 나잇값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이로 꼰대를 피할 수 없다면, 김형석 교수님처럼 ‘착하고 멋진 꼰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꽃보다 더 아름다운 낙엽이 될 수 있습니다. 꽃은 시들면 추해지지만 곱게 물든 낙엽은 책갈피에 고이 간직하니까요. ‘꼰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