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성령의 인(印)치심



‘인(印)친다’는 말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보통 사용하는 표현으로 바꾸면 ‘도장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 ‘스프라기스’(sphragis)라는 명사에서 온 동사로서, ‘봉인하다, 도장을 찍다, 인증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는 대부분 ‘seal’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인감도장을 찍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인친다’는 말은 ‘구원의 확신’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는 우리의 구원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주권적으로 예정(豫定)하셨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 구원은 변역(變易)하거나 폐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13-14)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치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죄의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소유를 유업(遺業, inheritance, heritage)으로 상속받게 되며, 이러한 은혜에 대하여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분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 속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인친다’는 말은 몇 가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안전(security): 완전히 봉인했기 때문에 비밀이 보장된다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비밀에 부쳐야 할 문서들은 봉인을 해서 비밀보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7:66은 예수님의 무덤에 돌을 굴려다가 입구를 막은 후 봉인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 무덤을 열고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지 못하게 단도리를 한 것입니다.

(2) 권위(authority): 성경에도 조서를 내릴 때 왕이 반지로 도장을 찍는 사례가 나옵니다. 이렇게 어인(御印)을 찍음으로써 그 조서가 왕의 권위로 공포하는 조서임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3) 진정성(authenticity): 어떤 것이 가짜나 짝퉁 모조품이 아니라 진품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미국에서 어떤 공산품이 안전기준을 통과한 후 품질보증의 표시로 UL Mark를 붙이듯이 고대사회에서는 진품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소정의 도장을 찍었던 것입니다.

(4) 소유권(ownership): 옛날에는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 도장을 찍었습니다. 미국 영화를 보면 목장에서 소에다 낙인(烙印) 즉 불도장을 찍어 소유권을 표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상 나열한 ‘인침’의 의미가 다 성경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 중에서도 ‘성령의 인치심’의 의미를 가장 적실(適實)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소유권’의 개념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상황에 의해서도 취소될 수 없는 것이므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진정성’이 보증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며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right)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사야 43:1)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구속’(救贖, redemption) 또는 ‘속량’(贖良)은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 종이나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양민(良民) 즉 자유인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는 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부채(죄의 삯)를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죄의 종살이, 사탄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자유의 몸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주인이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베드로전서 2:9).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속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기업(基業)이라는 말은 삶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인 터[基]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가나안 정복 이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기본적인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도록 분배해 주신 땅을 의미합니다. 최근 한국의 야당인 ‘국민의 힘’이 새로운 정강‧정책으로 ‘기본 소득’을 주장하고 있는데, 아마 이와 유사한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주시는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불효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