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어리석은 ‘지혜의 왕’ 솔로몬



솔로몬 왕은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도 잘 알고 있는 지혜의 대명사입니다.

그래서 난마처럼 얽힌 까다로운 송사의 판결이나 결정적인 분별을 요하는 중대사안에 대하여 흔히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다윗을 이어 왕위를 계승한 후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리던 날 밤에 꿈을 꾸는데, 여호와께서 현몽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직 연소한 자로서 이 많은 백성의 송사를 감당하기가 어려우니 선악을 분별하여 재판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장수와 부귀를 구하지 않고 원수 갚는 것도 구하지도 않고 오직 송사를 바르게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을 가상히 여겨 지혜는 물론이요 구하지 않은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도 주시면서 그와 같은 왕이 없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다윗처럼 여호와의 길로 행하고 여호와의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그의 날을 장구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부왕(父王)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마치 유언처럼 신신당부했던 권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곧이어 그가 ‘지혜의 왕’으로 인정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창기 두 여인이 한 집에 살면서 동시에 아들을 출산을 했는데, 그 중 한 여인의 아이가 밤중에 엄마에게 압사당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실수로 아이를 죽게 한 여인이 왕에게 고소하기를, 다른 여인이 밤중에 아이를 슬쩍 바꿔치기했다는 것입니다. 서로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우겨대자 솔로몬이 칼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산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반반씩 나누어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한 여인은 제발 그 아이를 죽이지 말고 상대방 여인에게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한편 다른 여인은 내 것도 되게 말고 상대방의 것도 되지 않게 반으로 나누라고 합니다. 그때 솔로몬 왕이 죽이지 말라고 간청한 여인이 진짜 엄마이니 그 여인에게 아이를 주라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이 소문이 전국에 퍼지자 온 백성이 “과연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로구나!” 하면서 왕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직 즉위 초기에 왕권이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 지혜로운 판결은 솔로몬의 왕권이 확고하게 세워짐으로써 향후 국정 수행을 원활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솔로몬 왕은 어마무시한 지식과 지혜의 소유자로서 가히 ‘걸어다니는 사전’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셔서 당대에 그를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잠언(箴言) 삼 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었으며, 초목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와 파충류 등 모든 동식물에 대하여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지혜를 듣고자 천하 모든 왕들이 사람들을 보내어 그의 지혜를 청했으며, 그 유명한 스바의 여왕도 엄청난 양의 예물을 가지고 친히 예방(禮訪)할 정도로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까지 물 붓듯이 부어주셔서 국고가 넘쳐났고 국력은 날로 승승장구했으며, 주변의 나라들이 선물공세까지 펴면서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음으로써 선대(先代)인 다윗 시대와는 달리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랬던 지혜의 왕이 ‘하나님과의 거리두기’를 하면서부터 그만 ‘어리석은’ 왕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그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이집트 바로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더니 급기야는 이방 여인 칠백 명을 후궁으로 또 삼백 명을 첩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각기 자기 나라의 신들을 섬기라고 신당(神堂)을 지어주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들자 이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켜 자기들 신을 섬기게 하면서 그의 마음이 아버지와는 달리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여기서부터 하나하나 사달이 나기 시작합니다.

(열왕기상 11:9-13)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기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결국 이 후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어김없이 착착 진행이 됩니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떠나자 그의 대적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왕을 피해 이집트로 정치망명을 갔던, 한때 왕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이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써놓으신 각본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의 일부일 뿐입니다. 20년 동안의 성전과 왕궁 건축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방 산당을 건축하느라 긴 세월 토목공사에 강제동원되면서 민생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고 민심은 극도로 이반되어 있었는데도 솔로몬의 왕위를 계승할 르호보암은 경륜있는 원로들의 자문 대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패거리들의 말만 듣고 아버지보다 더 심한 폭정(暴政)을 펴겠다고 하자 이스라엘의 열 지파는 르호보암을 버리고 여로보암에게 줄을 서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어렵사리 지켜온 통일왕국은 4대를 넘기지 못한 채 길고 긴 분열왕국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실 분열왕국의 단초는 이미 솔로몬이 제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지혜의 왕’이었으나 종당에는 ‘어리석은 왕’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잠언을 지었던 그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잠언의 요절(要節)들을 마음 깊숙이 새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못내 아쉬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잠언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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