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범 변호사의 법률칼럼

임종범 변호사 프로필


VA·MD·DC 변호사, 조지타운 법대 졸업(법학박사), 한미정상회담·한국헌법소장·황장엽 비서(통역 업무), 애플 대 삼성그룹 재판 법정통역



파산을 보는 한-미 시각 차이

질문: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났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런 대로 ‘잘 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상당한 재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빠진 독에 물 새듯이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렇게 재산이 흘러, 흘러서 없어졌습니다. 몇 년 전에는 사업체를 하나 인수해 운영해 보았습니다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급기야 가진 전 재산을 탕진하고, 빚만 잔뜩 지고 말았습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세상 물정을 모르고, 너무 순진하게만 생각했던 제 자신의 탓입니다. 이제는 옛날의 재산은 고사하고, 빚만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파산을 하고 싶습니다만 너무 두렵습니다. 주위의 눈도 그렇고, 나 자신도 너무 비참해지는 것 같아 차마 선뜻 파산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답변:

한국인이 보는 파산과 미국인이 보는 파산은 그 개념이 많이 다릅니다.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법적으로도 역시 많은 차이가 납니다. 우선 정서적인 차이를 보겠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에는 빚은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미국인의 정서에는 빚은 하나의 도구일 뿐, 빚에 의해 자유가 구속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파산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는 이제까지 45명의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45대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총 45명의 대통령 중 4명의 대통령이 개인파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링컨, 제퍼슨, 그랜트, 맥킨리 등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파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 파산을 한적이 있습니다. 파산을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대통령만 파산을 통해 재기를 꿈꾸어 온 것은 아닙니다. 많은 미국의 사업가들도 역시 파산을 통해 구제 받고, 재기의 발판을 다져 왔습니다.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 디즈니월드의 주인공 월트 디즈니, 하인즈 케찹의 주역 헨리 하인즈, 허쉬 초콜릿으로 유명한 밀튼 허쉬 등의 사업가들은 모두 사업에 실패하고 많은 빚을 진 적이 있으며, 그들은 한결같이 파산을 통하여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파산법은 자본주의 사회가 운영되는데 필수적인 모험과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미국의 헌법은 1787년에 채택되었고, 파산법은 1800년에 제정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파산법은 헌법만큼이나 오래된 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그러한 파산법이 있었기에, 오늘의 미국이 가능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파산에 관한 한국인의 정서는 많이 다릅니다. 미국은 파산을 한 자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며,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파산한 사람들이 대통령도 되고, 세계적인 기업가로서의 변신도 가능하였습니다. 이에 반하여 한국은 파산자를 ‘낙오자’, ‘실패자’, ‘신용불량자’, ‘무책임자’ 등으로 낙인을 찍고 사회에서 매장하였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파산자를 ‘죄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파산을 하느니 내가 죽고 말겠다”라고 하는 말까지 있을까요. 실제로 최근 죽음을 택한 여러 유명인도 역시 빚에 시달리다가 죽었다고 알려졌습니다.



파산을 보는 한-미 시각 차이 (2)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채무자에게 변제의 의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채무자는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채무자에게는 옵션이 많지 않습니다.

한국사회는 더더욱 채무자에게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사회는 오랜 유교의 전통 하에, 또한 지주 위주의 제도 하에서 가진 자를 보호할 뿐 가지지 못한 자, 사회적 약자에게는 관대하지 않았고, 21세기에 들어서서도 그러한 부조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은 예전보다는 채무자에게 관대해 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여전히 파산자에게는 무거운 족쇄를 채우며, 재기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파산법은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 크게 비교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자동중지.

미국 법에서는 파산신청자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그 날부터 ‘자동중지’라는 법의 효력이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 전화, 편지, 소송 등의 방법을 동원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변제 요구하는 모든 행위가 법으로 금지됩니다.

채무자를 가장 어렵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채권자의 독촉행위 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하루가 멀다 하고 날라오는 독촉장, 법원으로 출두하라고 요구하는 소환장 등은 채무자를 무척 난감하게 하는, 또 위축시키는 행위입니다.

미국의 파산보호 신청자는 신청서를 제출하는 그날부터 변제 요구자에 대해 더이상 변제 요구를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며, 이러한 채무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채권자에게는 법정모독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자동중지’란 없습니다. 채무자가 파산보호 신청을 해도 채권자는 지속적인 변제요구를 할 수 있으면, 채무자는 면책선고가 나는 날까지 채권자에게 계속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채권자는 별도의 법원 명령이 없는 한 지속적으로 독촉을 할 수 있으며, 채무자는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조차 채권자에게 해명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파산신청자를 보호하기에는 무척 열악한 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자격제한.

미국법의 경우 파산보호 신청자가 파산신청을 하고 나서 사회활동을 하는데 있어 그 어떠한 제약이나 제한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파산신청을 이유로 해고를 한다거나, 계약을 파기 한다면 그것은 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한국법의 경우 파산보호 신청자에게 많은 제약과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파산보호 신청자는 공법상, 사법상, 상법상 다음과 같은 자격과 지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공무원, 변호사, 공인회계사, 변리사, 공증인, 부동산중개업자, 사립학교 교원, 건축사(이상은 사법상 제약). 후견인, 친족회원, 유언집행자, 수탁자(공법상 제약). 주식회사/유한회사의 이사(상법상 제약). 아울러 파산신청은 채무자가 속해 있는 합명회사 또는 합자회사에서의 퇴사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하듯, 파산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법과 정서는 많이 다르며, 그러하기에 파산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는 단 한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2, 제3의 기회도 주어집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또 다른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문의: 703-333-2005 ▶E-mail: hanmijustice@gmail.com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