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 간첩·탈북민들의 ‘루트’ 한강하구, “모호한 군의 주적개념도 문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의심되는 탈북민이 개성을 통해 월북한 것과 관련해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1978년 12월 3일 밤은 나에겐 잊을 수가 없는 날이다. 그날 밤 나는 해병대 전역을 불과 1 개월여 앞두고 강화대교 아래 바지선(드럼통들을 밧줄로 엮은 낚시용)에서 밤새 경계근무를 했다. 무장 공비가 헤엄쳐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어 지나가는 물체에는 즉시 발포 명령이 내려졌고, 나는 아침 햇살이 안개를 헤집고 나올 때쯤 차가운 강 한복판에서 빠져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제대 말년에 얼어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11월 8일 충남 보령군에서 ‘광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일어났다. 무장공비 3명은 한 달여 동안 보병 3개사단, 공수특전단 5개 여단 등 현역군인 27,000여 명과 경찰과 예비군 180,000여 명 등 총 20만여 명의 대한민국 군인들을 농락하면서 공주시, 천안, 평택, 오산, 부천을 거쳐 12월 4일 자정 무렵 김포 감암포에서 한강에 도하하여 월북했다.

내가 2년 반 동안 복무한 김포, 강화도 일대에는 안개(농무)가 자주 낀다. 그날도 가시거리 20M 정도의 짙은 안개가 끼었고 강변에 참호를 파고 매복했던 우리 측 병사는 10M 앞에서 포복으로 도하 하는 공비들을 보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 한국에서는 3년 전 귀순했던 탈북민이 다시 월북하여 난리가 났다. 그것도 적군인 북한에서 먼저 발표하여 우리 군은 큰 망신을 당하고 있다.

탈북민 24세 남성 김모씨의 월북 경로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김포시·강화군 한강하구일대는 간첩과 탈북민들의 주요 ‘루트’이다. 이곳은 북한과의 직선거리가 2~3 Km 내외밖에 되지 않아 물이 많이 빠지는 날에는 불과 몇 백 미터만 부유물을 붙잡고 헤엄을 치면 쉽게 왕래가 가능하다. 짙은 안개로 몸을 쉽게 감출수도 있어 6.25 전쟁 전에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이 루트를 이용하여 월남했던 곳이다. 그래서 간첩들이 얼마든지 쉽게 내통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한 땅과 이 지역 사이에는 ‘유도’라는 무인도가 있다. 이 섬은 애초 우리 군 1개 분대 병력이 들어가 경계근무를 했었지만 북한군으로부터 몰살 당한 후 철수하여 지금은 학과 뱀이 서로 공생하고 있는 곳이다. 김씨 또한 2017년 8월 이 섬에서 잠시 쉬었다 귀순했다고 알려졌다.

김씨가 월북 전 이 일대를 답사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봤을 때 그는 이번 월북 때도 물이 많이 빠지고, 안개가 많이 낀 날을 택한 후, 이 ‘루트’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부전선 중 김포에서부터 서해 5도까지가 해병대 방어 구역이다. 천하무적이라는 해병대의 대북 경계태세에도 구멍이 난 것이다.

내가 근무했던 당시에는 경계 장비는 열악했지만 상대적으로 군기는 강했다. 낯엔 초소, 참호 공사에 동원되고 밤에는 녹초가 된 몸으로 미군이 주고 간 낡은 써치 라이터에 의지하여 해안경계를 펼쳐야 했다. 지금은 적외선 카메라에다 열화상 감지기까지 최신식 장비가 동원되겠지만 상대적으로 군인들의 군기는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병대 인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해안 경계선도 문제지만 군의 주적 개념이 모호한 현 정권 하에서는 군기가 빠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과학적인 장비를 가졌다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인지해야 한다. 빠져있는 군 기강으로는 수시로 피어오르는 짙은 안개와 살인적인 모기, 그리고 몰려오는 졸음과의 싸움에서 이길수 없어 적을 놓칠 확률이 높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날 확률도 높은 이유이다.

2020년 6월 15일 부터 입대하는 육군, 해병의 군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고작 1년 반 복무하는 병사들에게만 군 기강을 물을 것이아니라 군수뇌부부터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군이 주적 개념을 얼버무리다 보니 병사들의 군기까지 급속도로 해이해지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이것도 분명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때 ‘광천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끝나자 군의 별이 스무 개 이상 떨어졌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이번 사건에는 책임이 어느 선까지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