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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욕심의 덫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일어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기대고 싶고, 기대면 눕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말 타면 종 두고 싶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인데, 걷기보다는 말을 타고 가는 게 편하지만, 일단 말을 타보면 누가 말을 끌어주는 사람 즉 견마(牽馬)해주는 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욕심이란 한이 없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영어 문장 가운데 “The more, the more.”라는 매우 함축적인 문장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 경우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관용구적인 표현이지만, 대표적인 경우는 “The more we have, the more we want.”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하게 된다.”는 뜻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어 발음과도 비슷해서 기억하기도 참 쉽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이 모으라.”라는 ‘더 모아 더 모아!’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게 되고, 따라서 더 많은 물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전한 욕심을 갖는 것까지 탓할 수는 없습니다. 건전한 욕심은 다른 말로 바꾸면 ‘의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의욕이 없는 사람은 성취동기가 결여된 사람이며, 따라서 사회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말 중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말이 있습니다. 18세기에 일본에 초빙되어 식물학을 위시하여 자연과학을 가르치면서 기독교 신앙을 설파했던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박사가 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야망’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까지 함께 들어보면 그가 말한 ‘야망’은 이른바 ‘건전한 욕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오직 인간이 갖춰야 할 모든 것들을 얻기 위해서.”



그런데 문제는 사악한 욕심, 불건전한 욕심, 그리고 때로 과도한 욕심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욕심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영어권에서 많이 읽히는 NIV 성경은 여기에서 ‘욕심’을 문맥상의 의미를 고려해 ‘악한 욕구’(evil desire)라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욕구가 다 문제가 되는 아니라 악한 욕구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생명이 잉태되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하는 것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마음 속에 악한 욕구가 잉태되면 죄를 낳게 되고, 그 죄가 자라면 결국 사망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악한 길로 미혹하시지(tempt) 않습니다. 우리의 악한 욕심으로 인해 유혹에 빠져 죄를 짓게 되므로 아예 악한 욕심이 우리 마음에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며, 혹 그런 욕심이 생기더라도 지체하지 말고 단호하게 떨쳐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유혹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화로 원숭이 사냥법이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은 원숭이 사냥을 할 때 입구가 좁은 항아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나 과일을 넣어놓고 원숭이를 유인합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다가와 항아리 안에 손을 넣고 먹이를 움켜쥡니다. 그런 다음 먹이를 움켜쥔 손을 빼려고 하는데 항아리의 좁은 입구에 걸려 도무지 빠지질 않습니다. 그럴 경우 움켜쥔 먹이를 놓고 손을 빼면 되는데도 원숭이는 습성상 한번 손에 움켜잡은 것은 절대로 그냥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끝내 항아리에서 손을 빼지 못한 원숭이는 사냥꾼에게 고스란히 잡히고 맙니다. 한 줌의 먹이의 유혹을 못 이겨 결국 사냥꾼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에는 아간이 물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금하신 전리품을 취하여 자기 장막에 숨겨두었다가 들통이 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범죄로 인해 그는 물론이요 온 가족들 그리고 심지어 그의 모든 소유까지 모조리 석형(石刑)을 당하고 불사름을 당한 후 백성들이 던진 돌 무더기에 묻히는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까지 무너뜨린 이스라엘 군대는 식은 죽 먹기로 쉽게 이길 수 있는 아이성 전투에서 그만 패배하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괴로움을 당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교훈으로 삼기 위해 그가 처형당한 곳을 ‘아골’(괴로움) 골짜기’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간의 범죄는 물욕이라는 탐심에서 배태되었습니다. 그 탐심이 자라서 죄악을 범하게 되었고, 그 죄악의 결과로 패망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십계명의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극도로 싫어하시는 것인데, 골로새서 3:5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회악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독직(瀆職)사건, 뇌물수수, 부정부패 등은 대부분 왜곡된 욕구 즉 탐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목도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쌓아올린 인생의 공든 탑을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탐심을 물리침으로써 ‘욕심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늘 자신을 살피며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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