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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성경에 기록된 족보의 의미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는 족보가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부분에는 지루할 정도로 같은 형식의 족보가 나열돼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족보의 의미를 모르면 이런 부분은 차라리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면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역대기상은 1장부터 9장까지 전체가 족보로 채워져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인데, 만일 족보가 별 의미가 없었다면 이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족보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일반 세속역사와는 구별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the history of salvation)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전체 내용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족보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창세기 5:1은 “아담의 계보는 이러하니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셋, 에녹, 노아의 족보가 소개됩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라는 구절과 꼭 같은 형식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짜증스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마태복음은 펴자마자 처음부터 지루한 족보가 나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중에는 초신자들이 신약성경을 읽을 때는 아예 요한복음부터 시작하도록 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담은 장수하면서 많은 자녀들을 낳았겠지만 그의 족보는 점차 영적인 계열로 좁혀지다가 노아의 세 아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창세기 9:19에는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0장에는 이 세 아들의 족보가 나옵니다. 이어서 바벨탑 사건으로 온 인류가 지면에 흩어진 후, 셈의 후손들의 족보가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셈의 족보는 일단 아브라함까지 이어지고 곧바로 창세기 12장으로 연결됩니다. 창 12장은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따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지금까지 기록된 족보는 결국 믿음의 조상이요 구원사(救援史)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셋의 후손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족보를 다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세 아들의 족보를 나열한 후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는 셋의 족보만 따로 떼어 반복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족보를 구원사에 초점을 맞춰 점차로 좁혀가는 소위 ‘narrow down’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사에서 아브라함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은 다윗입니다. 사사시대가 끝나고 사무엘 선지자를 매개자로 하여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전환 지점에 룻기가 등장합니다. 룻기는 한 이방 여인의 효행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달이 되면 많은 설교자들이 룻기를 본문으로 해서 효성스러운 자부 룻을 언급합니다. 룻의 효행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룻기가 역사서로 분류되는 사사기와 사무엘서 중간에 마치 한 편의 삽화처럼 끼어든 것은 내용상의 연맥(緣脈)이나 중요도에 있어서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역사를 기술해가는 와중에 한 이방 여인에 대한 기록이 불쑥 튀어나오는 게 뭔가 좀 어색해 보이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룻기 4:18-22)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대목은 바로 “보아스는...다윗을 낳았더라”라는 대목입니다. 이른바 `아하 모먼트(Aha Mome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의 남편인 보아스는 자칫 대가 끊어질 뻔했지만, 이방 여인 룻을 통해 메시아의 가문을 이어가게 되며, 드디어 그 혈통에서 다윗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왕정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신정체제(神政體制, theocracy)를 통해 메시아의 면모를 보여줄 다윗이 어떤 혈통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룻기가 동원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추측이 아닐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하시리라고 하신 약속이 바로 그의 혈통상의 후손인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감격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태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오셨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기록된 족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특히 주목한 점은, 여기에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다말은 대를 잇기 위해 기생으로 변장해 시아버지를 유혹한 패륜의 여인이요, 라합은 여리고성의 기생이었습니다. 룻은 모압 출신의 이방 여인이었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도 윤리적으로 반듯한 여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 한 여인 마리아를 제외하면 모두 혈통상으로나 윤리적으로 흠결이 있는 여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족보를 결코 미화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저분하기까지 한 족보를 여과 없이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 짐짓 이러한 여인들을 거명하는 데는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에는 예외나 특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역력해 보입니다.

이상 살펴본 대로 성경의 족보는 단순한 혈통의 계보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건대, 성경의 족보는 하나님의 구원사가 인간의 온갖 훼방과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왔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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