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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염려를 이겨냅시다



벌써 3년 차에 들어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요즘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안, 공포, 우울, 공허, 좌절, 초조함, 외로움, 고립감, 절망감 등 다양한 증세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들의 수가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각종 여론조사와 언론의 기획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제2의 팬데믹’이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증상은 아무래도 불안증(anxiety disorder)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가족과 친지의 죽음, 일시적이거나 영구적인 건강상의 손상, 사업부진과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인 곤란, 인간관계의 소원함과 불화, 활동상의 부자유함과 제한 등으로 인해 점차 평정심을 잃어가고 있으며, 평소에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현상을 현실로 인정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엄연한 현상을 짐짓 눈 감고 부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기 나름의 방법과 지혜를 동원해서 염려를 희석시키고 해소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요구됩니다. 오래전 성수대교 붕괴 참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녹이 쇠를 좀먹듯이 염려는 우리 마음을 좀먹는다(As rust eats iron, so anxiety eats heart.)”는 서양 속담을 절감케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염려는 우리 마음을 좀먹기 때문에 무엇보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현대 정신의학계에서도 “모든 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심신의학(mind-body medicine)을 중요한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는 ‘Somatization’이라고 하는데, ‘정신적, 감정적 문제의 신체화(身體化)’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허균도 <동의보감>에서 심자일신지주(心者一身之主, 마음이 몸의 주인)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평생 염려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저술하고 강연을 했던 죤 학개(John E. Haggai)는 <염려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책에서 ‘염려야말로 인류의 적 제1호’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정신분석가들에 따르면 염려는 전염성이 강해서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가공할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 모든 나라의 수많은 무덤에는 이런 묘비명이 새겨져야 할 것이라고 매우 함축성 있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Hurried, Worried, Buried.(서두르고 걱정하며 살다가 이곳에 묻히다).” 누군가 현대인의 특징을 ‘Hurry, Worry, Angry’로 요약한 적이 있는데,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날 때부터 걱정하는 팔자를 타고났다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걱정도 팔자’인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몸 붙일 곳이 없을 것을 걱정한 나머지 아예 침식을 전폐합니다. 걱정이 태산 같으니 잠도 안 오고 식욕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고사에서 기인지우(杞人之憂, 줄여서 기우)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걱정하는 것 가운데 실제로 걱정할만한 것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머지 90% 이상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걱정, 또는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쓸데없는 걱정, 다시 말해서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이나 질병불안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부터도 전혀 걱정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적정한 불안감은 병적인 것이 아니라 정상입니다. 예컨대, 교통사고에 대한 염려로 조심운전을 하고, 건강에 대한 염려로 정기검진을 받는 것은 생산적인 염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나친 염려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이러한 걱정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삶의 에너지를 소진시켜버립니다. 제 경우에도 목회를 하고 가정을 영위하면서 수많은 걱정거리와 씨름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하게도 걱정으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천성적으로 긍정 마인드를 가진데다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성경말씀이 위로와 용기를 주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베드로전서 5장 7절은 정말 저에게 늘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여기서 ‘맡기라’는 말이 영어로 아주 실감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cast’ 즉 ‘던져버려라’는 뜻입니다. 걱정이라는 공을 하나님께 넘겨드리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적절히 처리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때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훈련은 한 마디로 ‘맡기는 훈련’입니다. 믿음의 척도는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느냐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시편 55:22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자상한 섭리를 언급하시면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에둘러 교훈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항시 크고 작은 문제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보다도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화폐에 새겨진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는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적 신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정작 그분을 신뢰하지는 않는 이른바 ‘신앙인의 불신앙’이라는 역설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잠언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빌립보서 7: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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