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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외로움을 이겨냅시다



외로움과 고독이 같은 의미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일까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솔직히 혼란스럽습니다. 같은 의미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의미인 것 같기도 해서 헷갈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는 이 두 가지 사이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또는 심리학적으로는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은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외로움은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소외'를 의미하고, 고독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발적인 자기격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이며 신학자이기도 한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라고 정의했는가 하면, 정신분석학자 설리번(Sullivan)은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외로움으로,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고독'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독은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고독에 대한 명언들을 찾아보면 고독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언급한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말라붙은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이다”(퍽 벅), “사회라는 것이 인격도야에 필요하듯이, 고독은 인간의 상상력을 기르는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제임스 로웰),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입센), “인간은 사회에서 사물에 대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오직 고독에서만 얻을 수 있다”(괴테), “고독은 인간의 기본감정이다. 인간은 홀로 떨어져 고독을 느낄 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하이데거) 등 많은 저명인사들이 고독을 상찬(賞讚)하고 있습니다.


고독의 긍정적인 면과는 달리 외로움은 대체로 부정적인 면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장수시대가 핵가족 시대와 조우하면서 특히 노인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인의 4고 즉 병고(病苦),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는 수명이 늘어날수록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곳 미국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새해 벽두에 가슴아픈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저소득층 아파트에 홀로 거주하던 80대 한인이 숨진 지 두 주가 지나서야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미주 한인들은 언어장벽과 문화 충격, 그리고 이 외에도 이민자라는 특이한 사정으로 인해 더욱 심한 고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이길 원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이므로 고적감, 고립감, 소외감, 비애감, 상실감, 무망감(hopelessness), 심지어 배신감 등 갖가지 고통스러운 부정적 심리증상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러한 증상은 비단 노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사이버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SNS, 스마트폰, 인터넷, 카톡, 메신저와 같은 수단으로 인해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연결(connected)은 되어있으면서도 정작 접촉(contacted)은 되어있지 않은 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런 현상을 일컬어 ‘connected but not related’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교감 없이 글로만 소통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A 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모두의 친구는 아무의 친구도 아니다)"라는 말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게임과몰입, 혼밥과 혼술로 대표되는 ’나홀로(1인)‘ 문화, 자발적 은둔형 외톨이, 비혼주의와 같은 트렌드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인 ’외로움‘ 현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을 꼬집어 ’외로움 바이러스‘라고 경고한 사회학자도 있습니다.



이 ’외로움‘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처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늘 나를 돌보아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자기의 목숨을 노린다는 이세벨 왕후의 최후통첩을 접하자 극심한 고독감과 함께 우울감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합니다. 그가 그렇게까지 신앙적으로 한순간 무너지고 만 것은 왕후의 위협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은근히 섭섭함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외톨이 심리증상으로 인한 우울증‘입니다. 단기필마로 하나님을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정작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하나님조차 자기를 외면하고 아무도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혈혈단신 힘겹게 버텨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이 급기야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감정으로 비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생각과는 판이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의 정조를 지킨 자들을 7천 명이나 남겨두셨던 것입니다. 이들은 엘리야의 숨은 응원자들이었으며, 그를 힘차게 일으켜 세운 소망스러운 서포터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말기에 제자들이 당국의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지레 겁을 먹고 예수님을 떠나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예수님도 인성을 지니신 분인지라 배신감과 적막감과 섭섭함과 외로움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3년간 함께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했던 자들이 아닌가. 인간은 버림받고 잊혀질 때 가장 힘들고 외로운 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평소에 가지셨던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이러한 감정들을 극복하셨습니다. 특히 외로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 모두 주님의 이러한 신앙을 본받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6:32-33)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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