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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전쟁과 평화



현재 진행 중에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를 머리에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전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에 공감이 갑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도 비록 개인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쟁의 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류 역사에 왜 전쟁이 끊이지 않을까요? 그 원인은 종족적인 요인, 지정학적인 요인, 경제적인 요인 등 여러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이 모든 요인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전경제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기적인 개인의 사사로운 영리활동이 사회 전체의 공적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이기심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선천적인 이기심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바로 원죄로 인한 죄성 때문에 이기심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힌다’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영어식으로는 ‘정글의 법칙(the law of the jungle)’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인즉 이러한 현상은 주로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글에서 왕노릇하는 사자조차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약자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배가 불러도 배를 더 불리기 위해 약자를 제물로 삼는 일을 서슴지 않으니 어떤 면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17:9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인간의 죄성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러시아는 배고픈 나라가 아닙니다. 구소련의 해체 이후 국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으나 아직도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산업자원이 매우 풍부한 부자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왜 형제나 다름없는 우크라이나를 탐내고 있을까요?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부가 NATO에 가입하려 하고, 그렇게 되면 자기네들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초장에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정학적(geopolical) 견지에서 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이유는 딴 곳에 있습니다. 비옥한 곡창지대인 우크라아나가 탐나고, 또 한때 자기들 영토였던 나라들을 하나씩 차례로 굴복시켜나감으로써 과거 대국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푸틴의 영웅주의적인 욕구가 숨겨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그러한 욕심이 마침내 마각(馬脚)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전쟁상황을 접하노라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심지어 인간방패까지 만들며 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러시아 군대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세계인들의 비난을 의식해 피난민들이 피난할 수 있도록 국소적으로 잠정 휴전을 하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전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 봅니다. 그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입니다.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민족들로부터 900가 넘을 정도로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온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겪은 전쟁은 6.25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국토는 황폐해졌고, 우리나라는 물론 온 세계의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희생을 당했으며,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불쌍한 전쟁고아들이 무수히 생겼습니다. 전쟁의 비극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 사태를 보면서 6.25 참상이 머리를 스쳐가는 것은 왜일까요? 국토가 유린당하고, 기간시설들이 파괴되고 있으며,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피난민의 수가 벌써 백만 명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게다가 가족들은 하릴없이 뿔뿔이 흩어지며 이별의 아픔에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이토록 엄청난 비극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무저항‧비폭력을 강조하셨습니다. 전쟁은 가장 잔인한 폭력행사입니다. 전쟁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고 실천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38-4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주님의 명령이니 그대로 실천해야겠지만, 실제로 실천하기엔 정말 어려운 말씀입니다. 인간의 타고난 성정(性情)으로는 정말 힘든 과제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nature)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supernatural)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약 2년 전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죠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으로 촉발된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때 가장 많이 등장한 표어는 ’No justice, no peace(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였습니다. 시편 85:10에서 노래하듯이,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출 때” 진정한 평화는 이루어질 수 있기에, 우리는 아모스 선지자와 함께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고 소리 높여 외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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