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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노년을 잘 보내려면



다윗은 시편 39편에서 인생의 연약함과 유한함과 허무함을 고백하면서,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39:4-7, 현대어 번역) “여호와여, 내 생의 종말과 수명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나에게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내 날을 손바닥 넓이만큼 되게 하셨으니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일순간에 불과하며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한 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부산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하는 일도 헛되며 기를 쓰고 재산을 모으지만 누가 가져갈지 알지 못합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의 희망은 오직 여호와께 있습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인생은 덧없이 지나갑니다. 모세도 시편 90편에서 인생은 잠깐 자는 것 같아서 마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스러지는 풀과 같으니 70년을 살고 80년을 살아도 그 연수의 자랑은 오직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인생무상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인생무상을 일컫는 다양한 메타퍼가 있습니다. 예컨대, 아침에 풀잎에 맺혀 영롱하게 빛나던 이슬이 햇빛이 비치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고 해서 초로(草露)와 같은 인생이라고 하고, 잠시 떠 있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뜬구름과 같다고 해서 부운(浮雲)과 같은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인생의 부귀영화가 식곤증으로 나른해져서 깜빡 잠든 사이에 꾼 한바탕 봄 꿈처럼 깨고 나면 한낱 부질없는 허망한 꿈과 같다고 해서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애써 이루어놓은 인생의 업적도, 우리가 분주하게 쏘다니며 알뜰살뜰 모아놓은 모든 재물도 죽음과 함께 다 우리 곁을 떠나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유한하고 덧없고 허무한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다윗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인간의 연약함과 아쉬움과 허무함을 단번에 해결해주시는 영원하신 전능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73:25-28)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이 구절은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의 동생이요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고 작곡한 챨스 웨슬리(Charles Wesley)가 애송했던 시구(詩句)라고 합니다. 천지에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에 그분을 마음의 반석과 영원한 분깃으로 삼는 자는 복이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흔히들 신앙생활에는 은퇴라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힘써 정진해야 할 일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성경에는 노년에도 열정적인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시므온과 안나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노인으로서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마침내 예수님을 뵙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여선지자 안나는 결혼한 지 7년째 되던 해에 청상과부가 되어 84세가 되었으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던 중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루살렘의 해방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노년에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노년에 할 수 있는 봉사로는 아마도 중보기도가 가장 잘 맞는 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뒷방 늙은이 행세를 탈피하고 늘 발전하려는 전취적인 기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갈렙은 믿음이 좋고 긍정 마인드를 가진 자였습니다. 그는 사실 여호수아 다음으로 제2 인자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프리미엄을 스스로 포기하고 오히려 험지를 분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가 요구한 땅은 헤브론 산지(山地)였는데, 이곳에는 가나안 땅 정탐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거인족 아낙 자손들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갈렙은 85세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능히 그 거인족을 몰아낼 수 있다고 하면서 노인장의 열정을 보였고, 과연 그가 말한 대로 마침내 그들을 쫓아내고 자신들의 기업(基業)으로 삼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웰빙(wellbeing)보다는 사람답게 늙는 웰에이징(well-aging)과 사람답게 죽는 웰다잉(well-dying)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라틴어에 ‘memento mori’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터부시합니다만, 사실 삶이 엄연한 현실이듯이 죽음도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해라고 기도했고, 모세는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는 지혜를 가질 때 우리는 남은 생애를 보다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노년이 되면 미래지향적인 성향보다는 과거지향적인 성향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꼰대’ 인간이 되기 십상입니다. 입만 열면 왕년에 잘 나가던 시절을 줄기차게 떠벌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인생의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자랑을 늘어놓는 대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죽는 날까지 중단없이 사명을 감당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인생 만년에 마치 유언처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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