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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바나바의 헬퍼십(Helpership)



구영삼·조현태 씨가 공저한 『헬퍼십』은 ‘리더를 리더 되게 하는 리더십’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앞 표지에는 ‘헬퍼십’의 정의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헬퍼(helper)는 차기 리더를 보장받는 이인자가 아니다. 리더를 리더 되게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비전을 이루어 나가도록 돕는 사람이다. 헬퍼들이 리더와 모든 사람들을 제대로 섬길 때 하나님의 공동체는 바로 설 수 있다. 이러한 헬퍼의 도(道)가 바로 헬퍼십이다.”

비유하자면, 헬퍼는 연극이나 영화에서 주연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퍼는 리더도 아니고 팔로워도 아닌, 그 역할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존재입니다. 2인자의 역할을 통해 리더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2인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점에서 자리매김이 결코 쉽지 않으며, 처신에 있어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 헬퍼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리더를 세워주는 섬김을 통해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고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참으로 높이 살만한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역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그보다 큰 자가 없다”고 친히 증언해주실 정도로 위대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 자”라고 말했는가 하면, “그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조연으로 자리매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도사의 풍모를 보이며 광야에서 회개를 외칠 때 사람들은 그가 주연인 줄 알고 그를 추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가히 ‘주연급 조연’이라고 해도 과한 평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사명을 다한 후에는 역사의 무대에서 홀연히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헬퍼의 가장 전형적인 모델로 흔히들 바나바를 꼽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교회에 갓 등록한 신입교우들이나 기독교에 처음으로 귀의한 초신자들을 돌보는 일을 ‘바나바 사역’이라 칭하고, 이 사역을 위해 ‘바나바 사역부’를 두기도 합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의미는 ‘위로의 사람, 격려자’입니다. 성경은 그를 ‘선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도 솔선수범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존경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를 ‘헬퍼의 전형’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런 뛰어난 성품이나 인격 때문은 아닙니다. 그가 기독교에 가장 크게 공헌한 점은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의 리더가 되도록 백방으로 힘썼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앞장서서 악랄하게 박해했던 극렬분자였습니다. 그러한 전력 때문에 심지어 사도들조차도 그의 회심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상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도들의 신임을 받고 있던 바나바가 바울의 회심의 보증인을 자처하며 그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선으로 바울은 사도들과 화해와 교제의 악수를 나누며 당당히 중앙무대에 데뷔하게 되며, 마침내 이방 사도로서 엄청난 사역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비록 바나바는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업적은 많지 않지만 바울이 초대교회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도록 조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사도행전 초반에는 ‘바나바와 바울’로 나오다가 점차 ‘바울과 바나바’로 순서가 바뀌고,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와 커튼 뒤로 사라진 후 다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기 드라마 중에는 주연배우보다도 조연배우의 맛깔나는 연기 때문에 시청률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때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박성광이 잔뜩 술에 취한 채 토해낸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푸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삼성그룹이 그룹의 이미지 광고 차원에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카피를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위대한 2인자들을 찾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맹목적으로 일인자만을 추구해온 문화를 뛰어넘어 협력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많은 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는 내용상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각종 상과 함께 아카데미 조연여우상에 빛나는 윤여정 배우의 탁월한 연기가 톡톡히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헬퍼의 리더십은 흔히 제2의 리더십이라고 말하는 참모 리더십 내지는 후계자의 리더십이 아닌 제3의 리더십입니다. 리더의 그늘에서 섬기다가 때가 되어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으려는 2인자가 아니라 리더를 세워줌으로써 그 리더가 이끄는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자로서, 리더에게 인정받기보다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입니다. 연주계에서는 제1 바이올린 연주자보다 제2 바이올린 연주자를 뽑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연주가 되기 위해서는 연주 실력은 말한 것도 없고, 이와 함께 제1 바이올린 연주자를 받쳐줄 줄 아는 겸손의 미덕까지 갖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담임목회를 하기 전에 다년간 부교역자 로서 다양한 분야의 사역을 경험해보았는데, 교회 안에서 자신의 실력을 내세우고 담임목사를 은근히 무시하려는 유혹을 받는 부교역자들이 있다면 진정한 헬퍼십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주제넘게 구는 탐욕자들로 인해 교회가 내홍에 빠지고 성장과 부흥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속한 교단에서는 아예 교단 헌법에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보좌하며, 행정, 교육, 음악, 상담, 2세 목회 등의 사역 가운데 한 가지 이상을 담당하는 임시목사로서 임기는 1년이며, 당회의 결의로 연임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서 곧바로 담임목사직을 승계할 수 없다는 조항도 명문화해놓고 있습니다.

(로마서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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