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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칼럼

강남중 기자

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78년 만의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나 홍범도, 고국강토에 돌아왔네. 저 멀리 바람찬 중앙아시아 빈들에 잠든 지 78년 만일세. 내 고국 땅에 두 무릎 꿇고 구부려 흙냄새 맡아보네. 가만히 입술도 대어보네. 고향 흙에 뜨거운 눈물 뚝뚝 떨어지네.”(이동순 시인의 비문 초안)

카자흐스탄에 안장돼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 76주년을 맞아 고국 한국으로 으로 돌아가게 된다. 홍 장군이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지 100년, 서거한 지 78년 만에 조국 땅을 밟게 되는 것.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영웅적인 인물이다. 연해주에 거주 중이던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됐고, 그 이듬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정착한 후 1943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위해 오는 8월 14일 카자흐스탄에 대통령 특사단을 파견되며 광복절인 8월 15일 저녁 한국에 도착해, 16일과 17일 이틀간 국민 추모기간을 거쳐 18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1868년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머슴, 식객승, 포수를 전전하며 천대와 멸시 속에 살았던 홍범도. 그러나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분연히 의병의 길에 투신했다. 간도로 건너간 선생은 1920년 우리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처음 꺾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승도 견인했다.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구사하는 장군’ ‘호랑이 장군’으로도 불렸다. 일제에게는 공포였지만, 고국의 민초들에게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해방이 되자 장군은 남북에서 모두 외면당했다. 남한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고 레닌에게 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낙인을 찍었다. 북한은 ‘비호(飛虎) 장군’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김일성과 비교된다는 이유로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로 이주했던 장군은 병원 경비,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 광복을 두 해 앞둔 1943년 세상을 떴다. “자주 독립은 최후까지 외치다가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항일 영웅의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그후 김영삼 정부 때 유해 봉환이 시도됐지만 북한의 조직적인 반대와 카자흐스탄의 미온적인 태도로 미뤄지다가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된것이다.

장군의 유해 봉환은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거의 같은 시기인 8월 16~17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이뤄지게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9년 한-카자흐스탄 정상회담 때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카자흐스탄에 안장돼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이후 양국 간에 실무협의를 진행해 왔다.

일제는 토벌 작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급기야 1908년 가족을 동원한 회유에 나섰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부인은 “내가 설혹 회유의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라며 버티다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숨졌다.

홍범도는 맏 아들이 일제가 쓴 부인의 가짜 귀순 권유 편지를 들고 오자 엄하게 꾸짖으며 총까지 쐈다. 총알이 귀를 스쳐 생명을 건진 아들은 의병이 됐고, 바로 그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만 16세의 어린 희생이었다.

일제가 만든 ‘조선폭도토벌지’에 따르면 1906년부터 1911년까지 항일 의병 1만7779명이 순국했다. 일제강점기 전부를 더하면 피해는 더 클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수많은 이름 모를 의병의 희생과 헌신 위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범도 장군은 머슴으로 포수로 살다가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독립전쟁을 이끌었네. 저 바람찬 중앙 아시아 빈들에 잠든 지 78년 만에 고국강토로 돌아왔네. 이 땅에 두 무릎 꿇고 맡아보는 흙냄새여, 눈부신 통일로 가는 조국이여.”(기념사업회 비문 최종안)

홍 장군에 앞서 대한의 기개를 떨쳤던 안중근 장군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장군은 자신의 유골을 조국이 완전 독립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홍장군의 뜻깊은 반장을 기뻐 하면서도 분단과 분열, 반목 과 대립으로 점철된 오늘의 현실이 두 장군을 비롯한 선렬들이 바라던 조국의 완전 독립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