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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파랑새 증후군



‘파랑새 증후군(bluebird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벨기에의 극작가요 시인이며 수필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에서 유래한 말로서,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증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어느 날 늙은 요정이 틸틸과 미틸 남매에게 찾아와 한 아픈 아이의 행복을 위해 파랑새가 필요하다며 그 새를 찾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이 남매는 파랑새를 찾아 추억의 나라, 밤의 궁전, 미래의 왕국을 전전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파랑새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의 새장에 있던 새가 바로 파랑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화는 우리의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향만 추구하는 파랑새 증후군은 많은 직장인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직(移職)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파랑새 증후군을 겪게 되면 욕구불만, 갈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우울증과 자괴감 같은 심리적인 증상뿐만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신체적인 증상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제가 목회할 때 교회 어르신들을 모시고 효도관광차 자주 갔던 곳 중에 성극을 공연하는 ‘Sight & Sound Theatres’라는 초대형 극장이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 Lancaster에 있는 이 극장은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뮤지컬로 정말 실감나게 공연하는 극장으로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입니다. 이 극장으로 가는 길에 ‘A Bird In The Hand’라는 표지판이 유독 눈을 끌곤 했습니다. 동네 이름 치곤 꽤 산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름 깊이 숙고해서 지은 동네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속담 중에 “A bird in the hand is worth two in the bush.”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솝 우화에도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내 손 안에 있는 한 마리 참새는 숲 속에 있는 두 마리 참새와 같은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남의 손에 있는 천냥보다 내 손에 있는 서푼이 낫다” 또는 “남의 돈 천냥이 내 돈 한 푼만 못하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속담들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6-8)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자족(自足)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스스로 만족하게 여김'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는 영어(囹圄)의 몸으로서 결핍과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12)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인 의식주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줄로 알아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마치 밑 빠진 독 같아서 아무리 채워도 다 채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이 한없는 욕심이 다 채워져야만 만족할 수 있다면 아마 평생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불평할 게 아니라 가진 것으로 인하여 만족하고 감사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는 불만은 나보다 더 특혜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시기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비교야말로 불행의 시작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입니다. 미국의 속담 중에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잔디 문화권인 미국에서는 잔디를 얼마나 잘 가꾸는가 하는 것이 큰 관심사입니다. 자기 집 잔디도 그만하면 충분히 푸른데도 이웃집 잔디가 더 푸른 것 같이 보이자 괜히 심술이 나고 시기심이 발동합니다. 설령 상대방의 떡이 더 크고, 이웃집 잔디가 더 푸르다 해도 내 몫의 떡으로 만족하고 내 집의 잔디로 만족할 때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와 견주면 항상 모자라기 마련이지만 아래와 견주면 항상 남습니다. 위만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하는 탓에 불평과 불만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발조차 살 여력이 없어 신세타령을 하던 사람이 신발이 있어도 신을 발이 없는 자를 보고는 불평했던 자신의 못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뉘우쳤다는 이야기를 우리 모두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제 곧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맞이합니다. 1620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puritan)이 천신만고 끝에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농사를 지어 3년 만에 첫 수확을 한 후 그들을 초대해서 축제를 벌인 것이 미국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그 순례자들(Pilgrim Fathers)은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추위로 인해 가족들을 잃기도 하고, 질병과 굶주림으로 숱한 고생을 했습니다. 그들이 첫 번 추수감사절을 맞이할 때도 결코 모든 게 풍족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아직 삶이 안정되지 못하고 모든 게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없는 것으로 인하여 불평하는 대신 가진 것으로 인하여 감격하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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