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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서로서로 감사합시다



감사의 달 11월을 보내면서 오늘은 ‘서로에게 감사하자’는 주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감사에는 수직적인 차원이 있는가 하면 수평적인 차원도 있습니다. 수직적인 감사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 즉 종적인 감사라면, 수평적인 감사는 이웃에 대한 감사 즉 횡적인 감사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만복의 근원 하나님’이라는 찬송가도 있고,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라는 찬송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여러 면으로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은 이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부터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긴다”고 하는데, 간혹은 정반대로 사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하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천하무도한 자는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기독교 윤리를 십자가의 상징으로 설명한다면, 두 막대기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올바른 기독교 윤리가 정립됩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강령인 십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의무와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의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반듯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이 된다고 하는 의미가 십계명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베틀로 길쌈을 할 때 씨줄과 날줄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교직(交織)되어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종적인 관계와 횡적인 관계가 가지런하게 엮어져야만 조화롭고 강인한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사표(師表)가 되는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의 종적인 관계가 철저했던 분이지만, 이웃 간의 횡적인 관계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그의 서신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교회 성도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전하면서,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한 동역자들과 교회를 위해 수고한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환대하며 잘 도와주라는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해봅니다.

(로마서 16:1-13)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이 이토록 자상하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까지 거명하며 문안 부탁을 하고 또 그들이 수고한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평소에 자기 동역자들 그리고 복음과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뭇 성도들에게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고린도전서 맨 마지막 부분에도 여실히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교회 대표로 그를 방문해 그와 교회 간의 오해와 불신으로 인한 불편한 관계를 해소해줌으로써 십 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듯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refresh) 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고 진심을 담아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 앞장서서 수고하고 애쓰는 교역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존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의 수고가 있기에 교회는 유지되고, 그들 덕분에 나도 교회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봉사를 대신해서 수고하는 자들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시기하고 질투하고 때로는 깎아내리고 모함까지 하는 못난 성도는 아닌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천지에 도착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생존하며 첫 수확을 거두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드림은 물론이요 동시에 그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어려웠으면 옥수수를 다섯 알씩 나눠 먹었을 정도였습니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식탁에 상징적으로 옥수수 다섯 알을 올려놓는 가정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먼 이웃들도 챙겨야겠지만, 아울러 가장 가까운 이웃,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자칫 소홀하기 쉬운 가족들에게 더욱더 ‘서로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목회할 때 성전부지를 구입하고 본당과 비전센터를 짓느라 교회가 재정적으로 무척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도님들이 어려운 중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격했던 기억이 새삼 머리를 스칩니다. 성도들도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노심초사 애쓰는 교역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서로 감사할 때 교회의 분위기는 훈훈해지며, 그러한 교회는 은혜롭게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警醒)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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