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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시간의 속성 –시간에 대한 단상들-



‘시간의 속성’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나니 조금은 거창한 느낌이 듭니다. 시간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분석한 논문도 아닌데...그래서 ‘시간에 대한 단상들’이라는 소제목을 보태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새해가 되면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는 새해결심을 구체적으로 하는 대신 ‘시간을 아끼자’라는 달랑 한 마디 말로 새해결심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한 마디 말이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계획이야 한 해 동안 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세우면 되지만 그 모든 구체적인 계획들을 이룰 수 있는 추진력은 매순간 성실하게 사는 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시간을 아끼고 우선순위를 따라 지혜롭게 선용하는 것이 모든 계획을 성사시키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의 속성을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한번 정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째, 시간은 자가생산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인간이 시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것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헛된 바람입니다. 시간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흔히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천부적 재능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영미권에서는 ‘God-given talent’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은혜를 정의할 때 ‘무자격자에게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favor)’라고 정의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2022년이라는 한 해의 시간을 공짜 선물로 받았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시간은 매매가 불가능한 아이템입니다. 흔히들 “시간은 돈이다” 또는 “시간은 금이다”라고 말하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시간을 파는 백화점은 없습니다. 만일 시간이 금이라면 권세자들과 부자들은 영생불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들도, IT 산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수퍼리치’(super rich)들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꼼짝없이 이 세상을 하직해야만 합니다. 벤쟈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생명이다”(Time is life.)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돈을 모으는 재(財)테크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활용할 줄 아는 시(時)테크는 더 중요합니다. 시간은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에 시테크는 인생의 총체적인 설계인 생(生)테크라고 해도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셋째, 시간은 일과성과 불가역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흘러간 물도 모터로 다시 끌어올려서 얼마든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한 번 흘러가면 되돌릴 수 불가역적인 자원입니다. 시간은 다시 고쳐 쓸 수도 없습니다. 리사이클이 안 되는 물품입니다. 일단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애걸복걸하며 다시 돌아오라고 애원해도 매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라는 신은 앞머리는 무성한데 뒤는 대머리입니다. ‘크로노스’는 헬라어로서 ‘시간’이라는 뜻인데, 이 신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즉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 때를 놓치고 나면 잡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오므로 그 때를 기다리며 항상 준비하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넷째,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한두 번 사랑 때문에 울고 났더니, 뜬구름 쫒아가다가 돌아봤더니 청춘은 아예 모른 체 저만치 가버리고 말았네.”라며 자신을 속인 세월을 탓하는 나훈아의 노랫말처럼 시계는 때로 멈추어 서지만 시간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모릅니다. 운동경기에서는 작전을 짜기 위해 타임아웃을 불러 시간의 진행을 중단시킬 수 있지만 인생 경기장에서는 타임아웃이란 없습니다. 시간은 택시의 미터기 같아서 승객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계속 제 갈길을 갑니다. 지난 1월 4일 저녁에 이곳 워싱턴 지역에 폭설로 인해 95번 고속도로가 24시간이나 정체되는 바람에

우버택시를 이용한 한 승객이 600불이나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네티즌들의 성화에 못 이겨 회사가 200불로 합의를 봤다고 합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이렇게 불가항력적으로 흘러갑니다.

다섯째, 시간은 저축을 할 수 없습니다. 돈은 저축할 수 있고, 요즘에는 난자와 정자도 은행에 맡겨놓을 수 있으며, 심지어 젊은 날에 열심히 운동해서 근육도 저축할 수 있지만, 시간은 보관해 둘 수 있는 금고도 없고, 맡겨둘 수 있는 은행도 없습니다. 어떻게든 그날 분은 그날 다 써야 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아닐까요. 문자적으로는 ‘오늘을 붙들어라’(Seize the day.)인데, 일반적으로 ‘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로 새기고 있습니다. 간혹 계절 날씨답지 않게 참 좋은 날씨를 만날 때면 그 한 날을 붙들어두었다가 나중에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저 마음뿐입니다.

여섯째, 시간은 조절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운행속도를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out of control’입니다. 시간은 얄미울 만큼 늘 일정한 보폭으로 흘러갑니다. 때로 우리는 시간이 좀 느리게 갔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고, 반대로 좀 빠르게 갔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지만 시계의 초침은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잰걸음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시간의 보폭에 맞추는 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할 일을 뒤로 미루거나 미적거리는 습관은 초읽기에 들어가면 허둥대고 당황하게 만듭니다. 미리미리 대비하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후회막급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은 자칫 오용되거나 악용되기 십상입니다. 에베소서 5:16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은 원어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세월을 구속하라’(Redeem the time.)입니다. 즉 사탄에게 빼앗긴 내 시간을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다시 빼앗아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혜롭지 못해 자칫 사탄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금쪽같이 귀한 시간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NIV 성경은 이 구절을 의미상으로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라고 의역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풍성한 삶을 일구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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