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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베드로와 바울의 파트너십(partnership)



파트너십(partnership)은 동반자 관계를 의미하며, 보통 비즈니스 파트너 즉 동업자들이 상호 이익의 증대를 목적으로 협력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비즈니스 외에도 여러 단위의 단체들 간에, 그리고 보다 넓게는 국가 간에도 상호 국익을 위해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파트너십은 피차간 유익이 되는 윈윈(win-win) 전략 그리고 유익의 증폭을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파트너십은 주종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이며 상호의존 관계입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파트너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를 들어 지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몇 가지만 제시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분담의 원칙이 지켜져야 합니다.

파트너 간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파트너 각자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선교 즉 복음전파라고 하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와 바울은 성장배경이나 개인적인 성향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골수 유대인인 반면 바울은 소아시아 해변에 있는 이방 땅 길리기아 다소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베드로는 토박이 국내파였고, 바울은 해외파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배경을 고려해 각기 사명을 달리 부여하셨습니다. 즉 베드로에게는 유대인 선교 그리고 바울에게는 이방인 선교를 감당하도록 역할분담을 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7-9)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이방인)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유대인)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주님의 동생)와 게바(베드로)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바울에게 선교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역할을 분담시키셨습니다. 바울에 비해 유대인의 환경에 더욱 친숙한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선교, 그리고 베드로에 비해 이방인들의 환경에 더 익숙한 바울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선교를 맡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따로 또 같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합니다.

분담을 하되 각자 가지고 있는 모든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유대 경내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바울은 이방인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 널리 통용되던 그리스어 외에 라틴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에 두루 능통한 자였습니다. 게다가 로마가 세계를 지배함으로써 도래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에 로마 제국 판도에 속한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만능 여권 즉 ‘로마 시민권(Civitas Romana)’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짐작건대 아버지가 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덕분에 그는 아예 로마 시민권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그의 신분은 해외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유용한 어드밴티지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남다른 신분 때문에 외국의 고위 공직자들 앞에서도 간증을 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당하게 자신을 심문하려는 천부장을 향해서도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당혹하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이방 선교에 최적화된 인물이었으며, 하나님은 바로 이때를 위해 그를 비밀병기로 은밀하게 예비해두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파트너 간에 상호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동업자들 간에 신뢰가 무너지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비즈니스 동업자들 간에 신뢰가 무너지면 배신감까지 느끼게 되며, 결과적으로 파트너 모두가 손해를 입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비즈니스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일례로,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를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본들 신뢰가 없으니 결국 허공에 맴도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복음전파를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을 외에는 공통분모가 별로 없는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고, 상대방의 역할에 대하여 존중하고 협조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사에서는 이 첫 번째 교회회의를 가리켜 ‘예루살렘 공의회’라고 합니다(사도행전 15장). 이 모임에서 골수 유대주의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러자 회의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유대주의자들의 대표격인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면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바울 일행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의장의 자격으로 회의를 주재하던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베드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절충안을 제시함으로써 논란이 일단락됩니다. 또 한번은 베드로가 자신의 신앙과는 달리 유대인들 앞에서 위선적인 처신을 하는 걸 보고 바울이 그를 면전에서 책망한 일이 있었습니다(갈라디아서 2:11). 그러나 이 일로 둘 사이에 금이 갔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일체 반감을 갖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쌓여 있었기에 바울의 무례함(?)을 너그럽게 넘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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