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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가정은 ‘밥상공동체’



5월에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할 것 없이 가정에 관련된 기념일이나 행사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히 가정에 관련된 기사나 칼럼이나 시론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5월을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떤 지인께서 일전에 가정에 관련된 글을 한 편 보내주었는데 무척 공감이 가는 내용이 있어서 그 가운데 한 부분을 소개함으로 이 칼럼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가정을 일컫는 말로 중국에서는 '일가'(一家), 일본에서는 '가족'(家族)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둘 다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무리’라는 의미입니다. 영어권에서는 패밀리(family)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밀리아(familia)에서 온 말입니다. '익숙한 사이'라는 뜻이며, 영어 familiar(친숙한)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양 문화권이지만 일가 또는 가족이라는 말 대신 '식구(食口)'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합니다. 문자적인 의미는 ‘함께 밥 먹는 입'이란 뜻입니다. 즉 한국인에게는 가족이란 한솥밥을 먹는 ’밥상공동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나 자식을 소개할 때도 자연스럽게 '우리 식구'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한 집에 살아도 한 상(床)에서 밥을 먹지 않거나 식사할 기회가 없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식구'라고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도 해봄직합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해서 다 ‘식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회식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회사 동료들, 스포츠 멤버들, 취미 동호인들, 써클 동아리들, 반창회나 동창회 회원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등 다양한 동기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가리켜 식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식구는 적어도 한 ‘핏줄’을 나눈 혈연공동체라고 점이 저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 혈연 때문에 식구들 간에는 서로 감싸고 보듬어주고 동고동락하는 ‘가족애’가 발휘되어야 합니다. 가정사역연구소인 하이패밀리를 창립한 송길원 목사님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머릿글자들을 모은 두음자어(acronym)로 ‘family’의 의미를 재미있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역시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늘 재치 있는 발상을 통해 가정사역의 새로운 개념과 유형들을 창안해내는 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은 한 마디로 ‘사랑으로 엮인 공동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동체들 중에도 공동운명체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가족공동체 안에서는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온 가족의 기쁨이요 슬픔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피차 책임성 있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연대의식이 필수적입니다. 찬송가 가사에도 나오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이기에 영적인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웃고 함께 울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성경은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성격을 공동운명체로 특징짓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과 지체의 비유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교회라는 한 몸(body)에 붙어있는 지체(member)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하기에 지체들은 각기 고유한 기능이 있으면서 동시에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의존하고 상호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적절하게 지적하면서 결론적으로 동고동락의 공동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흔히들 정치를 가리켜 생명이 있는 활물(活物)이라고 합니다만, 교회야말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그러므로 지체들이 각기 자기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동시에 서로 조화롭게 협력할 때 몸이 튼튼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구성원 각자가 각기 자기 몫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동시에 피차 조화롭게 협력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진정 건강한 가정이 되고 결과적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밥상공동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밥상머리 교육’을 들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언론에 소개된 이후 한국 학부모들의 지대한 관심을 끈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고단한 이민생활 속에서도 6남매를 모두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에 보내 고경주 미국 보건복지부 차관보, 고홍주 전 미국 법무부 법률고문, 고경은 예일대 교수 등 6남매를 모두 글로벌 엘리트로 키워낸 전혜성 박사의 자녀교육 노하우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전혜성 여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 했다"며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었습니다. 지금은 핵가족시대인데다 현실적으로 온 식구가 한 밥상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어서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노력을 한다면 어느 정도 개선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이번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그러한 기회가 좀 더 많아진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 결속력이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유대인들은 매년 유월절이 되면 가장이 유월절의 유래를 자녀들에게 구두로 전승하면서 자연스레 ‘밥상머리 교육’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찬식(communion)은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한다는 일차적인 의미에 더하여 온 성도들이 한 떡에 참여하고 함께 잔을 나눈다는 공동식사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Table Community Church라는 이름을 가지 교회들이 여럿 있습니다. 식탁교제(table fellowship)에 큰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의도에서 지은 이름일 것입니다. 시편 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는 구절은 도란도란 정겨운 밥상공동체의 모습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살가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정공동체를 이루기를 소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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