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



우리 나라에도 예전에는 어린이들이 별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용주의적인 면에서만 보면 어린이들은 생산성보다는 소비성이 크기 때문에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어린이들의 인권이 신장되고 어떤 경우에는 너무 어린이 위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 요즘에도 무심코 어린이를 무시하는 언행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각종 분야에서 초보자나 미숙한 자를 일컫는 말로 어린이의 줄임말인‘~린이’라는 말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 골프 초보자는 골린이, 헬스 초보자는 헬린이, 요리 초보자는 요린이 같은 만들입니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은연중에 어린이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어린이 하대문화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기에 정부 당국에서는 이러한 표현들을 사용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이가 어리고 아직 미숙한 점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완전한 한 인격체로 어린이들을 존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6:4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비들’은 아버지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부모를 의미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으로 훈육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바로 앞에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권면이 나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윤리는 일방윤리가 아니라 상호윤리이며 쌍방윤리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 6장에는 부모와 자녀의 친자윤리 외에도 남편과 아내의 부부윤리, 그리고 상전과 종의 주종윤리를 언급하면서, 서로에게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 기본이 되는 도덕지침인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오륜’에 대해서는 딱히 비판할 여지가 없지만 ‘삼강’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군위신강(君爲臣綱,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 부위자강(父爲子綱, 자식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근본), 부위부강(夫爲婦綱,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은 상호윤리라기보다는 일방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 여권이 극도로 신장된 여성우위 시대, “윗것들이 아랫분들을 섬겨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하는 자녀 위주 시대에는 ‘삼강’ 윤리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퇴물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기본 윤리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효(孝) 사상은 유별해서 달리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모가 자녀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히 여기는 문화는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남달라서 자녀의 출세를 위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지만 그것을 자녀 존중의 확실한 지표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대리만족을 위해 다분히 이기적인 동기로 극성을 부리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까요.

에베소서 6:4은 자녀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주라는 권면 대신 가장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노하게 하는 일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로 뭉뚱그려 말한다면, 부모가 부모답지 못할 때 자녀들은 마음에 노여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모가 위선적일 때,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때, 모범을 보여주지 못할 때, 솔선수범하지 않을 때 부모의 훈계는 자칫 자녀에겐 한갓 잔소리에 지나지 않으며, 이럴 때 자녀의 마음속에 노여움이 발동하게 됩니다. 시쳇말로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발심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가 화목하지 못하고 늘 불화하며 티격태격 싸울 때 자녀들은 노여워하게 되며, 때로는 공포심을 갖기도 합니다.

우리는 결혼조건으로 자주 가정교육을 내세우곤 합니다. 부모가 살아왔던 삶의 스타일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수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교사나 요즘 널리 활용되고 있는 멘토보다 부모님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대상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시인인 하버드는 “한 사람의 아버지는 백 사람의 교장보다 낫다”고 했고, 서양 격언에 “한 사람의 어머니는 백 사람의 선생보다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고, 딸을 보면 어머니를 알 수 있다는 말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은 평생 쉽게 사라지지 않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 안에 내재해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을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과거의 어린 아이’라고 하며, 전문용어로 ‘성인 아이(Adult Child)’라고 합니다. 『내 안에 우는 아이가 있어요』라는 책이 있는데,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바로 이 ‘성인 아이’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원인이 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었으면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명령에 이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성경과 기독교의 지침에 따라 자녀를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좀 부족하고 불완전하더라도 전혀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대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육하고, 말보다는 실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육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니다(Children learn not by words but by deeds.). 자식 농사만큼 어려운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설령 풍작은 아닐지라도 흉작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희망을 품고 꾸준히 노력하노라면 의외의 수확을 일궈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