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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



로마서는 많은 성경학자들이 성경 전체에서 반지로 비유할 만큼 중요한 책이며, 그 중에서도 8장은 반지의 보석으로 비유할 정도로 핵심적인 장(章)입니다. 로마서 8장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 한 장에 중요한 영적 진리들이 빼곡하게 박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작 부분인 1-2절이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구절에는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이 대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법’은 구약의 율법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법칙 내지는 윈리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세우신 여러 다양한 법칙에 따라 이 세상을 섭리하고 계십니다. 이를테면, 중력의 법칙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도 결국 중력과 관련이 있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에 의해 모든 물체는 대기권 안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법(法)이라는 한자어를 풀이해 보면, 삼수(水) 변에 갈 거(去)자가 합해진 말입니다. 물이 가는 길을 보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법은 바로 이러한 법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 법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생명의 법칙’과 ‘사망의 법칙’입니다. ‘생명의 법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법칙이요, ‘사망의 법칙’은 죄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아 영원토록 저주와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칙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생명의 법칙’에 따라 ‘사망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늘 법정에서 재판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공로를 근거로 “You are not guilty!”라고 선고하심으로써 무죄방면이 되며 죄 없는 의인으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신앙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입니다. “죄의 삯(대가)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로마서 6:23).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갈등에 대하여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이 갈등의 원인으로 자신의 내면에 작용하고 있는 한 가지‘법(법칙)’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좀 길게 인용해보겠습니다.

(로마서 7:15-23)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여기에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나는 선을 행하고자 원하는데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됩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걸 보면 율법 자체는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선을 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연약한 육신의 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죄성(sinful nature) 때문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을 때 처음에는 내 의지가 이기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은 중력의 ‘법칙’에 의해 팔이 아래로 처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침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What a wretched man I am!).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라고 장탄식을 토해내며, 구제불능인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심한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장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희망에 찬 반전의 고백을 이어갑니다.

(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우리는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기를 원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그렇게 살 수 없기에 아예 구원의 여망이란 찾아볼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주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님 안에 있는 성명의 성령의 법 덕분에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정죄당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복된 소식(복음)을 선물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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