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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삼위일체(trinity) 하나님



오늘은 교회 절기상으로 삼위일체주일(Trinity Sunday)입니다. 기독교 교리 가운데서도 삼위일체 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교리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교리이기 때문에 그 의미 정도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추수감사절 같은 절기는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정작 이 모든 절기들보다 더 중요시해야 할 삼위일체주일은 의식조차 못한 채 간과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갖곤 합니다.

삼위일체교리는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지만, 성부, 성자, 성령 세 분(person)으로 존재하신다는 교리입니다. ‘한 본질이면서 세 분’이라는 표현은 인간 세상에서는 그 유비(類比, analogy)를 찾을 수 없는 존재양식이기 때문에 적확하게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다양한 비유들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인간은 한 인격체에 지정의(知情意)가 있다든지, 동일한 한 사람이 아버지도 되고 아들도 되고 남편도 된다든지, 꼭 같은 H2O이지만 액체와 기체와 고체로 존재할 수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설명을 시도해보지만 이러한 설명 방식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오해를 일으켜 자칫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삼신론(tritheism)’에 빠질 오류가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님과 관련해 ‘완전한 신이면서 완전한 인간(True Man and True God’이라는 신인양성(神人兩性) 교리만큼이나 불가해(不可解)한 교리입니다. 이것은 목회자를 비롯해 모든 성경 교사들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교리이니 아예 무시해버리거나 모른 채로 그냥 지나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한 가지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부인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유명한 신학 명제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루터교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유한은 무한을 내포할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i)”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한 명제입니다. 인간의 유한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를 담으려고 할 때 이성은 용량이 넘쳐 폭발하고 만다는 주장입니다. 또 어거스틴이 주장한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는 명제도 유명한 신학 명제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초이성적인 영역도 많이 있으며, 특히 기독교의 진리는 말씀에 의한 창조, 동정녀 탄생, 부활, 수많은 기적 사건 등 이성을 뛰어넘어야 이해될 수 있는 진리들로 가득 차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은 특히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고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다(Trinity is beyond human understanding.)”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성과 신앙이 양립할 수 없는 경우에는 신앙으로 도약하는(take off) 길밖에 없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담장을 뛰어넘는 길밖에 없으니까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진리는 이성의 눈으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does not make sense) 미련한 것(folly)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철학 즉 인간의 지혜를 숭상하는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를 구원한다는 자가 자신조차도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구하지 못했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인간의 이성적인 추리만으로는 성경의 진리를 다 이해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이 점에 대하여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21)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 법률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철학자)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전도의 말씀, 케리그마)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금년 2월에 소천하신 한국 지성의 아이콘 이어령 교수님은 이성의 영역인 합리성(rationality)만을 인정했던 분이었지만, 먼저 하늘나라에 간 따님 이민아 목사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성의 영역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고 마침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의 이러한 회심은 『지성에서 영성으로』이라는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성과 영성은 항상 대립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중세 시대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의 대가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을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는 일에 바쳤습니다. 그는 원칙적으로 신앙과 이성은 둘 다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모순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신학과 철학은 서로 다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진리를 추구하지만 방법에 있어서 다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적절하게 지적한 대로 지성을 추구하는 이성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기능이므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칫 기독교 신앙을 반(反)지성주의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때로 성경의 내용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 이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이성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 정죄받을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이성으로 신앙의 내용을 모두 재단할 수 있는 양 착각하는 인본주의적 태도는 지양되어야만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다루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초점을 맞추어보았지만 솔직히 미흡한 점이 없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바라건대, 인간의 이성적인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는 진리가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늘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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