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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언 72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한반도는 허리가 반으로 잘린 채 아직도 남북한이 서로 반목하고 있으며, 더욱이 북핵문제로 인해 긴장의 수위가 날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분단조국의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6.25전쟁을 가리켜 흔히들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하지만, 그 가슴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겠기에 지금 미국에서는 수도 워싱턴 D.C.에 이미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로 유명한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이 있는데도 이와는 별개로 ‘추모의 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습니다. ‘추모의 벽’에는 대리석 100개에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 6,595명과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7,174명 등 총 4만 3,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이제 모든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어 오는 7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아 제막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지난 22일에는 6.25 전쟁에서 팔다리 잃은 윌리엄 웨버 대령의 안장식이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부인 애널리 여사는 이날 안장식에 앞서 “죽기 전에 추모의 벽 준공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싶다”던 웨버 대령의 유언을 생각하며 '추모의 벽' 공사 현장을 미리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6.25전쟁으로 인해 이산가족 1천만 명, 전쟁미망인 30만 명, 전사 및 사망자 17만 8,569명, 전쟁고아 10만 명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군 외에도 미국을 위시해 참전국 16개국의 희생을 모두 합하면 정말 엄청난 희생이 치러졌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조차도 3.1절이나 8.15 광복절 행사는 거창하게 치르면서도 6.25전쟁은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혹자는 잊고 싶은 흑역사를 굳이 기억하고 기념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동족상잔의 뼈아픈 6.25전쟁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6.25 상기주일’을 지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처참하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역사는 하나의 사실(historical fact)로서 기록되고 기억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인해 BLM(Black Lives Matter)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면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Confederacy)의 영웅이었던 인물들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그들의 이름을 붙인 학교나 기관도 개명(rename)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도 별 저항 없이 속속 정책으로 결정되는 가운데 한때 심지어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동상도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메트로 지역의 간선 도로 중에 남군의 영웅인 로버트 리(Robert E. Lee) 장군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Lee Highway’가 있는데, 얼마 전에 이 도로의 이름을 바꾸는 것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 장군과 쌍벽을 이루며 남부군을 지휘했던 잭슨 장군("Stonewall" Jackson)의 이름이 함께 들어간 Lee-Jackson Memorial Highway도 개명하기 위해 새 도로명을 공모 중에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불행한 역사도 역사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큰 절기인 유월절은 이집트의 압제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방의 기쁨을 맛본 절기이지만, 한편으로는 400년 간 모진 아픔과 설움을 겪은 하나님의 선민의 부끄러운 역사를 상기시키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 아픈 역사를 자자손손 기억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 깊이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중에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로 시작되는 6.25 노래가 요즘은 행사에서 많이 불리지 않는 것 같은데, 아마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등과 같은 가사들이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비위를 거스를까 저어하여 짐짓 외면하려는 마음의 일단이 반영된 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어쨌든 우리는 6.25의 참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6.25전쟁이 터지던 해에 어머니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의 참상을 그저 교과서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고 있을 뿐 솔직히 실감을 하고 못하고 있지만, 벌써 넉 달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처참한 모습들을 대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습니다. ‘Z’ 자가 적힌 러시아 탱크와 대포들이 벌집 쓰시듯이 폭격한 수도 키이우나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주요 도시들의 사진 속에서 폐허가 된 건물들과 즐비한 시신들, 그리고 생존한 자들의 눈물과 절망 어린 모습들을 보면서 6.25 전쟁의 참상이 어떠했을지 짐작해보곤 합니다.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는 “평화로운 때는 자식이 부모를 땅에 묻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부모가 자식을 땅에 묻는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크라이나는 부모가 자식을 땅에 묻을 수조차 없는 절대 비극의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최악의 평화가 최선의 전쟁보다 낫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우리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평화의 소중함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과 갈등으로 심신의 곤란을 겪으며 한숨짓고 눈물 흘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한 유일한 나라이며, 이제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강대한 나라로 발돋움했습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맥컬러(David Maccullough)는 대한민국의 이같은 발전은 어떤 관점에서도 합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하나의 ‘이변’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우연히 생긴 이변이 아니라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실한 기도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시편 144:15). 평화의 왕으로 오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성도들이 더 많아져서 이 땅에 진정한 샬롬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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