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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겸손하신 예수님



깔뱅의 역작인『기독교 강요』에 성 어거스틴과 제자들이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덕목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어거스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깔뱅은 이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신앙은 곧 겸손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가장 큰 신앙의 덕목은 바로 겸손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성서학자인 머리(Andrew Murray)는 『겸손』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겸손이 없었더라면 인류의 구원도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겸손이야말로 기독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높고 높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성육신하셨기에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겸손이 없었더라면 인간의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겸손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웠습니다. 원래 당신이 지니고 계셨던 하나님의 지위, 그리고 그 지위에 따르는 권위와 위엄과 존귀와 영광을 다 버리셨습니다. NIV 영어성경은 “He made himself nothing.”이라고 실감 나게 번역했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낮아지신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 시공의 틀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하셨겠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죄 없으신 분이 인간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수치스러운 십자가형을 당하셨으니 그 육신과 마음의 고통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려는 겸손한 믿음이 있으셨기에 그 극한 고난과 모진 고통을 능히 견뎌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성탄절이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마음 속에 모셔들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 속에 예수님이 성탄하실 구유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화려한 왕궁에서 귀하게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보잘것없는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으며, 그마저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말 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긴 갈기가 휘날리는 백마를 타고 입성하신 게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우스꽝스럽게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없이 낮아지고 또 낮아지신 삶이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빌립보서 말씀은 흔히 ‘겸손의 송가’라고 일컬어집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비하(卑下, humiliation)와 승귀(昇貴, exaltation)를 노래하는 내용이지만,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겸손을 언급하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이면에는 실제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고, 바울은 이러한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라고 말할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애정이 있었기에 명백한 잘못을 그냥 모르는 체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4:1-2)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 교회는 여러 면에서 칭찬할 점이 많은 교회였지만,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도의 세력다툼은 옥의 티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겸손을 들어 이들을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명이 거론된 이 두 여성도는 아마도 그 교회의 지도자급에 속하는 자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라는 여성도를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였기에 아마도 여성 파워가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울이 그저 한 마디 지나가듯이 훈계를 했지만 그 훈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다툼은 대부분의 경우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의 다툼은 마귀에게 빌미를 제공하므로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겸손에 관한 교훈을 주셨고,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충격요법을 통해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족식 후에 스승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의미를 알고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낮아지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주셨습니다. 낮은 골짜기에 물이 고이듯 낮아진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고인다는 영적인 원리를 맘 깊이 새겼으면 합니다.

(야고보서 4:6,10)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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