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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아버지날을 맞이하여



한국에는 어버이날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부모의 날(Parents’ Day)’이 있습니다. 2022년 올해는 7월 24일이 부모의 날입니다. 미국에서는 부모의 날과는 별도로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따로 있습니다. 아버지날은 6월 셋째 주일입니다. 아버지날이 되면 아이들이 저에게 늘 선물을 사줍니다. 괜찮다고 해도 필요한 게 뭐냐고 묻거나 스스로 알아서 기어코 적절한 선물을 해줍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집이나 식당에 모여 회식을 합니다. 올해도 저는 제 취미 생활에 필요한 선물들을 받았으며, 온 가족이 식당에서 회식을 하기로 예약해놓았습니다. 이럴 때면 아버지라는 사실이 맘 뿌듯하고, 효성스러운 자녀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는 모성애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고 또 실제로 감동적인 모성애 스토리도 자주 대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부성애보다는 모성애가 더 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찬송가에도 온통 어머니를 칭송하는 내용만 있지 아버지를 기리는 찬송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라는 한 구절에서, 그마저 어머니에게 빌붙어서 딱 한 번 언급될 정도로 아버지는 아예 시세가 없습니다. 가정사역자인 송길원 목사님이 오래전에 가정세미나 중에 하신 말씀이 기억나곤 합니다. 요즘에는 아이를 깨울 때도 아버지의 말은 먹히지를 않는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엄마가 일어나래!’라고 엄마를 끌어와야 겨우 영이 선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아버지는 존재조차도 없는 ‘파파 알리바이 시대’라는 말이 유행할까 싶습니다. 온통 어머니 찬가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물에 콩 나듯 간간이 아버지나 부성애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는 건 그나마 퍽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크리스천 작가인 조창인의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TV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소설은 가시고기에 빗대 주인공의 부성애를 잘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10살짜리 아들의 백혈병을 고치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희생을 감수한 덕분에 아들은 골수이식수술에 성공하지만, 주인공과 이혼한 엄마를 따라 프랑스 떠나게 되고, 아빠는 홀로 덩그마니 남겨진 채 끝내 말기간암으로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가슴 먹먹해지는 애잔한 이야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수초나 돌 밑에 알을 낳는 일반 물고기와는 달리 새끼를 키울 집을 따로 짓는 특성을 가진 물고기입니다. 모래 바닥이나 수초 줄기에 마치 새 둥지처럼 집을 짓는데, 이 둥지에 알을 낳은 후 엄마 고기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아빠 고기 혼자서 밤새 불침번을 서면서 목숨 걸고 알을 지키며 새끼들이 부화하여 자랄 때까지 정성껏 돌봅니다. 새끼들이 자라서 둥지를 떠날 때쯤이면 그 동안 새끼를 돌보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빠 고기는 마지막으로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습니다. 그러면 새끼 고기들이 와서 아빠의 시신을 뜯어먹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기 몸뚱어리조차도 고스란히 내어주는 숭고한 희생으로 인해 가시고기는 흔히 부성애의 상징으로 소환되곤 합니다.



태평양 연안에 사는 천축잉어는 암놈이 알을 낳으면 숫놈이 그 알을 입에 담고 부화시킵니다. 입에 알을 담고 있는 동안 수컷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급기야 알들이 부화하는 시점에는 기력이 소진되어 죽고맙니다. 죽지 않으려면 입 안에 있는 알들을 그냥 뱉아내고 먹이를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숫놈은 죽음을 초월한 놀라운 사랑을 선택하여 끝까지 스스로 자신을 희생합니다. 종족보존본능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쪽은 대부분 암컷인데, 천축잉어의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족보존본능은 후손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며, 이러한 본능은 물론 조물주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부여하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에서 부성애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부성애입니다. 압살롬이 부왕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다윗과 신하들은 황급히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 후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오히려 압살롬이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자 다윗은 군대장관들에게 “내 아들 압살롬은 아직 젊어서 철이 없으니 아비인 나를 봐서라도 그 녀석에게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어주길 바라오”하면서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그런데 쫓기던 압살롬의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카락이 그만 상수리나무에 걸려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동안 요압 장군이 창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그의 부하 열 명이 에워싸 단칼에 쳐 죽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이 통렬한 마음으로 부르짖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참으로 놀라운 부성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감히 아버지의 왕위를 노려 역모를 꾀하고, 백주에 지붕 위에서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비의 후궁들을 욕보임으로써 이제는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했던 천하무도의 패륜아를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부하 장군들에게 왕으로서의 자존심을 다 내려놓은 채 부디 내 아들의 목숨만은 해하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아버지의 마음, 그리고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목 놓아 울부짖는 그 부성애는 아버지의 위대함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버지는 위대한 존재이며,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탈권위를 부르짖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부권은 땅에 떨어지고, 남편은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귀한 분입니다. 부모가 여태껏 해로하시며 살아계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들이여, 이제 가슴을 쭉 펴고 머리를 높이 쳐들고 홧팅합시다!

인륜에 관한 계명 중에서 약속이 있는 계명은 제5 계명이 유일합니다.

(신명기 5:16)“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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