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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저널 이사. 뉴욕 AM 1660 K 라디오 방송위원 /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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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칼럼] 한국의 장마전선과 정치지형

한국에서는 장마전선이 한 달 넘게 한반도 상공에 머무르면서 물폭탄을 퍼붓고 있다고 한다. 올해 장마는 기후변화로 국지성 집중호우가 많아 피해가 더 크단다. 걱정이다. 그래도 전선이 만주로 북상하면 장마는 끝이 난다. 한반도를 덮고 있는 정치 사회의 갈등현상의 저기압이 더 큰 문제다.

서울의 한 유력 여론조사 기관은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를 매주 조사해 발표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018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15개월 동안 약 45% 수준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급격한 상승세가 10주 동안 찾아왔다. 주지하는 데로 4월 셋째 주에 총선을 치러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5월 첫째 주에는 71%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최근은 엄청난 하락세다. 상승세만큼 급격한 급하강기가 10주째 이어지고 있다. 7월 마지막주 국정수행 지지도는 47%다. 정점이던 5월 첫째 주와 비교하면 25%포인트가 빠졌다. 국민 넷 중 한 명꼴로 지지를 철회했다. 제기되는 설명 중에 가장 간명한 것은 ‘코로나19 효과 소진’이다. 급상승을 이끈 힘이 코로나19 대응 성공과 국제사회의 찬사였으니, 파티가 끝나면 제자리로 되돌아갈 숫자다. 그리고 파티가 끝났다.

정부·여당이 만난 위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여당 내에서도 상황을 심각한 위기 국면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데, 지지율 하락의 속성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수행 부정 평가자들이 제시한 이유를 보면, ‘부동산 정책’을 꼽은 사람이 23%로 가장 많다.

부동산 문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지지 기반 붕괴를 부른 핵심 뇌관이었다. 부동산 폭등에 불만을 품고 노무현 정부 지지 블록을 이탈한 수도권 30·40대는 이명박 정권 탄생에 힘을 실었다.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통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동시에 정권의 도덕성에도 상처를 입힌다. 집을 팔 기회를 주겠다고 해놓고 다주택자가 줄줄이 포진한 정권, 윗세대는 은행 빚으로 집을 사놓고 젊은 세대에는 대출을 막아서 자산 축적 기회를 박탈하는 정권이라는 비판이 간단치 않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히 누가 좀 더 손해를 보고 이득을 보는 문제를 넘어 자산 축적이라는 거대한 경쟁의 핵심 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을 불공정하게 관리한다는 인상을 참가자들에게 줄 때, 이것은 민생 문제를 넘어 정권이 내거는 가치가 흔들리는 문제다.

거기다 집권여당은 고 박원순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다루는 과정에서도 가치와 도덕성에 손상을 입었다. 민주당의 한 젊은 재선 의원은 박시장 문제가 터진 후 일종의 세대 차이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박 시장 문제에서 처음으로 어떤 집단적 장벽이랄까 저항감이랄까 그런 걸 느꼈다. 여기서 밀리면 젊은 시절의 가치가 통째로 부정된다는 느낌을 선배들이 받았단다…..

원래 전국선거를 크게 이기고 나면 승자 쪽으로 지지세가 한동안 쏠리는 현상이 있었다. 100일 정도 이런 효과가 지속되곤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아니다. 전국선거를 크게 이기고 거의 곧바로 지지율 추락이 시작된다. 이건 대단히 독특한 결과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지방선거는 6월 둘째 주에 있었고, 민주당이 압승했다. 그 주에 국정수행 지지도는 79%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대략 이 정도 지지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것이 선거 다음 주부터 바로 지지도 하락이 시작되어, 9월 첫째 주에는 49%까지 떨어진다.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지지도를 잠시 회복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연말에 45% 선으로 내려앉은 지지도는 이후 15개월 박스권에 들어간다. 100일 정도는 누린다던 선거 승리 보너스가 사라졌다. 2018년 1차 급하강기에는 최저임금 정책이 원인으로, 2020년 2차 급하강기에는 부동산 정책이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일관된 패턴이 나타나는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유권자가 선거 결과로 보내는 메시지를 집권 여당이 두 번 다 잘못 수신한 게 아닐까? 하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 유권자 차원에서 ‘야당 심판 투표’는 존재한다. 선택 가능한 대안 둘 중에 야당 쪽이 명백히 더 나쁘면, 유권자는 정부에 불만이 있더라도 여당을 찍는다. 중도적인 유권자들에게 두 차례 선거는 ‘야당 심판 선거’ 속성이 강했다.

그런데 이 결과를 정부·여당이 ‘압도적 지지와 전면적 승인’으로 해석해버리면, 즉 중도층이 ‘이념 이슈’로 간주하는 의제들까지 전면 승인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면, 유권자는 국정 지지 철회로 경고신호를 보낸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이후 이런 상황이 되풀이해 일어나고 있고, 마침 당대에 가장 뜨거운 이슈인 최저임금과 부동산이 이런 경고신호를 내기 위해 불려 나온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야당이 여전히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운데, 이와 가장 닮은 정치 구도는 이명박 정부 후반기인 2011년에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에 실망은 높아지지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여야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축적된 불만의 에너지는 9월 이후 ‘안철수 현상’으로 폭발했다. 계기는 10월에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이제 8개월 남았다.

구도가 유사하다고 상황까지 닮은 건 아니다. 2011년 한나라당보다는 2020년 민주당의 상태가 단연 안정적이다. 2011년의 민주당보다 2020년 미래통합당의 상태가 더 취약하기도 하다.

민주당의 우위 구도는 여전히 안정적이지만 ‘180석 승리’가 보여준 압도적 인상만큼은 아니다.

이럴때 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은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협치는 상대방의 주장을 통해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수정, 보완할 기회를 준다”며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청할 필요가 있는 발안입니다.

그러면서 김 최고위원은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는 시대적 상황에서 협치를 위한 정치인의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정책에는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있다.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여겨진 의제도 마찬가지”라며 “그런 의제일수록 실제로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백지상태서 검토할 수 있는 용기가 정치인에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최고위원은 “의회 민주주의의 구성 요소인 다수결의 원칙은 토론과 설득을 전제로 한다”며 향후 국회 운영에 있어 의회민주주의 정신 실현을 위해서는 여야 간 충분 토론 설득 양보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 이틀 동안 300㎜ 넘는 비가 쏟아진 중부지방에 5일까지 또다시 500㎜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추가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걱정이다. 그래도 전선이 만주로 북상하면 장마는 끝이 난다.

문제는 형성·소멸을 반복하는 기상현상이 아니다. 고기압 정체전선처럼 아니 그보다 더 강하게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부동산 투기, 산업재해, 갑질, 성폭력은 영야의 갈등 보혁의 갈등 반목은 장마의 기상전선보다 더 길고 강고하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아들을 각각 국군과 빨치산으로 전쟁터에 내보낸 두 할머니가 긴 장마철 내내 갈등하다가 장마가 끝나면서 화해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소설처럼 장마전선의 소멸과 함께 음울한 ‘사회적 장마’까지 확 걷히기를…. 한여름밤의 꿈처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