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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 단상 이민우 선교사. 강한 생존력을 가진 중국인!

동방의 유태인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재테크에 밝고 현실적으로 치우친 경향의 현대 중국인들.
역사가 깊은 중국,. 중국인들은 흙이 있는 곳이기만 하면 세계 어디든지 살아가는 강한 생존력을 지닌 민족중의 하나이다.

본토를 제외한 전세계 흩어져 사는 중국계만 2022년 기준으로 5천만이니 한국 인구 만큼의 인구가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화교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인도네시아로 5% 인구분포이지만 1300만 정도로 경제력 장악 등을 이유로 1970년대 배화정책과 공산세력 관련 폭동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당했고

그 여파로 박정희 정권 때 타산지석 격으로 한국에서도 화교를 차별대우하여 토지매입제한 등을 실시, 당시 많은 화교들 생계수단이 농업, 노동, 음식점등 서비스 업종이었는데 생존조건 악화로 대만 일본 미국 캐나다로 대거 이주했고 1980년대 말에는 군사정부의 등장으로 또 정치안정 등의 사유로 이주하는 주기를 보여 한국 내 인구가 한때 7만 이상 이던 것이 1만 5천 이하로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와 해외노동자가 급 증가 되면서 가장 많은 중국인(재중교포 포함)들이 3-4년 계약기간 동안 체류하다 귀국했고, IMF 이후 숫자가 급증, 중국인 유학생 수와 국제결혼 사유로 장기 체류자가 늘어 신 이민 인구도 증가. 한때 배화정책으로 지구상 유일하게 차이나 타운이 없던 한국은 IMF 를 계기로 화교자본을 포함한 외자유치에 중점을 두어 세계화상대회(世界华商大会)를 유치하고 인천 등지에 차이나 타운을 건설해주기 시작 외자 유치로 정책전환을 하여 시대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2번째로 화교가 많은 나라가 말레이지아 이다.
20%인구분포이며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의 내륙을 통한 이주 용이 지역에 많이 이주했고 현지 경제력을 장악해 현지인과의 마찰이 심하고 갈등이 많은 것은 유태인 해외 이주역사와 유사하다. 또 배를 타야 이주 할 수 있는 필리핀 등 정계 경제계를 장악한 이웃 나라 들이 많다. 21년 독재자였던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시대에 화교 동화정책 때 대거 이주해왔다.
대만과 같은 복건 어를 사용하는 특성이 출신지 배경을 알 수 있다.

대만 자체 인구가 2천 5백만 정도인데 세계 화교인구가 5천만 명 이니 많은 인구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먼 남미 칠레도 10위 안에 드는 100만 명 정도가 거주한다.
북미 중에서 미국에만 2017년 기준으로 약
503만 명이 거주하며 캐나다 역시 100만 명을 넘은 지 오래됐으며 한때 뱅쿠버 등 홍콩 대만 출신 화교인구가 부동산 가격을 투기하여 정부 통제를 받기도 했다.

그밖에 공산화 전후에 해외 이주해 유럽 등지로 이주한 1세대들, 그리고 현지인들과 통혼하여 혼혈 중국인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인구이다.
1981년 대만 유학 시 정부에서 유학생들에게 무료 대만 일주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해외 지명 중에 익숙치 않던 마다카스카르라는 아프리카 최대 섬에서 중국어 학습 차 유학 온 학생들, 포르투칼, 멕시코, 기타 남미 유럽 국가에서 온 화교학생들이 그렇게 많은지 놀랐다.

2000년 이후 경제력 신장을 힘입어 재차 해외 이주 붐이 불어 새로운 풍토의 인해전술?이 늘어 아프리카 중동 제3 세계 재패를 노리는 중국의 야욕을 알 수 있다.
많은 무상차관을 제공하여 제3세계국가 경제력 장악을 목표로 하여 현지 국 들과 기타 강국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제는 중국에 한해서 선교대상 범위가 중국본토가 아닌 지구촌 전체로 확대 된지 20여 년 지났다.
그러다 보니 중화권선교대상 국가가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일본 같은 주위 이웃 나라뿐 아니라 멀리 아프리카 중동에서 중국어를 구사하는 선교사 요청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LA에 소재하는 최대의 중국인 신학교인 Logos Evengelical Seminary 의 새 학장도 아프리카 출신 선교사이다.

중국 선교 비젼 을 품은 지망생들은 이미 이런 변화추세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한국교회 등 파송 기관들이 중국 아닌 나라들에 중국선교사로 파송 하는 게 불편한 여러 복합 요인들이 작용하는 선교 마인드에 한계가 있다.

한편 미국 내 중국인들의 이민역사는 1800년대 말부터 일본에 이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들어오기 시작했다가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출국이 엄격 통제되던 1949년 후 20여 년 동안 동결되었다가 조금씩 풀려 거의 친지초청 형태와 점차 유학 결혼 등으로 이민자가 증가하였고 1866년 5월6일 급기야 중국인 이민자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어 노골적인 반 이민 정책의 대상국가가 바로 중국인이었다. 호주에서도 백호정책을 한동안 실시하였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중국인 배척 운동을 펴던 미국정부가 서부지역 금광개발과 철도사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수입하기 위해 중국인 노동력을 수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노동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그대로 눌러앉아 거주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 처음에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북서부 캘리포니아로 내지로 이동한 후 점차 미 전국으로 확대해 나간다.

다음주에는 본토를 제외한 세계화교 교회의 조직 등을 추가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