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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삼무(三無) 인생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三多島)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는 도둑이 없는 무도(無盜), 거지가 없는 무걸(無乞), 대문이 없는 무대문(無大門)이라는 삼무(三無) 정신과 풍습을 자랑거리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전남 광주에서 커피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무능, 무식, 무대뽀’라는 삼무(三無) 정책을 언급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한편 차기 야권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소위 ‘간 보기’ 처신에 대해 소통이 없고, 세력이 없고, 콘텐츠가 없다는 일부의 비판이 일면서 또 다른 삼무(三無)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있습니다. 정준호 배우는 건배사를 할 때 ‘세상에 공짜가 없고, 인생에 비밀이 없으며,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뜻으로 ‘삼무 건배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삼무(三無) 인생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는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가 등장합니다. 흔히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선생님, 제 형에게 유산을 저와 나누어 가지라고 말씀 좀 해주십시오.”

이에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신 후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베푸셨습니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이 많은 곡식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심하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현재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은 후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그런 다음 내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해야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베푸신 후에 예수님은 이 비유의 의미를 친히 요약해 주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이 부자의 ‘삼무 인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의 인생은 하나님이 없는 ‘무신(無神)의 인생’이었습니다. 종교학자들에 의하면, 종교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합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펜서(Spencer)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갈파했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죄와 허무와 죽음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세 가지 궁극적인 과제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절대한계를 종교에 귀의해 극복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신학자 슐라이어마허는 이러한 심리를 가리켜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전도서 3:11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의 세계에 대하여 갈구하는 마음이 있으며, 이생이 끝난 후 영원토록 이어지는 내세(來世)에 대한 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는 그 나름의 내세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이생이 다인 줄 착각하고 있었으니 ‘어리석다’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새 찬송가 9장에는 “주 앞에 나올 때 우리 마음 기쁘고 그 말씀 힘 되어 새 희망이 솟는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특히 ‘영원에 잇대어’라는 구절이 늘 마음에 와 닿습니다. 비록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영생복락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고난도 슬픔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의 인생은 이웃이 없는 ‘무린(無隣)의 인생’이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매순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부자는 창고를 더 넓혀 지어야 할 정도로 많은 곡식을 거두었지만 그 중의 극히 일부라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려는 마음이라곤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인색한 삶을 살았으니 이웃으로부터도 인심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옛말에 ‘덕불고 필유인’(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따르게 되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덕은 쌓은 대로 갑니다. 이 부자의 장례식에는 조객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셋쩨로, 그의 인생은 자신조차도 없는 ‘무아(無我)의 인생’이었습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직접 쓴 서예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한국 최고의 부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집무실로 사용한 승지원에 부친이 쓴 이 작품을 걸어 놓고 늘 가까이했다고 합니다. 팩트 체크는 해보아야겠지만, 세계를 제패하고서도 32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요절한 알렉산더 대왕이 유언을 남겼는데, 자기가 죽거든 관 양쪽에 구멍을 내고 양손을 밖으로 내보이게 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공수래 공수거의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어리석은 ’삼무 인생‘을 지양하고 지혜로운 삶을 지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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