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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감사지수를 높입시다



우리는 행복지수라는 말은 잘 알고 또 자주 사용하지만, 감사지수라는 말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행복지수와 감사지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감사지수가 곧 행복지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교시절에 외웠던 영어 문장을 늘 마음 속에 되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Happiness consists in contentment.” “행복은 만족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consist of...’는 ‘...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니 구분해야 하며, ‘lie in’을 써도 같은 의미라는 것을 설명하기 의해 자주 등장하는 예문입니다. 해마다 발표되는 국가별 행복지수를 보면, 네팔이나 부탄과 같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들이 선두를 지키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의외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을지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한 것이요, 반면에 비록 많은 것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만족도가 높으면 비례적으로 행복감도 높아진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감사할 때 만족할 수 있고, 만족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으려면 평소에 누리는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순간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게 기적입니다. 성인은 약 60조 개의 세포가 있는데,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이 미세한 세포에 세포막이 있어 세포에 필요한 것은 보존하고 불필요한 것은 밖으로 내보내는 아주 정밀한 문들이 있으며, 그 작은 단위 안에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기능들이 세분되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우리 몸의 혈관의 길이는 약 12만 킬로미터로 지구 세 바퀴의 길이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핏줄 가운데 한 군데만 막혀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심장은 하루 10만 번 정도 한시도 쉬지 않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700리터의 혈액을 순환시키며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실어나르는 역할을 합니다. 신장은 하루에 약 150리터의 혈액을 여과하여 이 중 99%의 여과액은 신세뇨관에서 재흡수하고 나머지 1.5리터의 농축된 여과액은 소변으로 배출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나니 우리 몸이 얼마나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매순간이 얼마나 기적적인 순간들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한 동시에 그토록 수고를 아끼지 않는 우리 몸에게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139: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영국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다.”

죤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유대인의 인생독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감사는 은혜 받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데살로니가 전서 5:18)일진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은혜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입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원망스러운 일은 마음 깊숙이 새겨 잘 잊어버리지 않지만 은혜는 쉬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미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기보다는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불평하고 속상해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소록도에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교회 입구에는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는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으로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사용한 말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도 거창하지도 않고, 우리 주변 가까이 소소한 일상 가운데 널브러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도 마다할 건 없지만, 평소에 늘 행복하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요?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라는 말은 우리가 늘 곱씹어 보아야 할 말입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모든 은혜와 축복의 씨앗입니다. 감사를 심어야 더 풍성한 감사 거리가 맺힙니다. 감사는 마치 젖소의 젖을 짜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젖을 짜야 계속 젖이 나옵니다. 묵혀두면 안 됩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듯이,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복된 삶을 누리길 원한다면 감사지수를 높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러한 진리를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바 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필요 없는 불야성(不夜城)의 천국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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