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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칼럼

강남중 기자

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한국 추운 겨울을 훈훈하게 녹인 뉴욕 동포의 선행



뉴욕에 거주하는 한 70대 재미동포의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은 보은의 선행이 코비드 펜데믹으로 꽁꽁 얼어 붙은 세밑 태평양의 간극을 훈훈하게 메우고 있다.

“너무 늦었지만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편지를 씁니다.”

지난 12월 12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에 한 남성이 찾아와 노란색 봉투를 건넸다. 이 남성은 자신을 “미국에 있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왔다”고 설명했다. 봉투 안에는 2000달러 수표와 함께 편지 한 통이 들어있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미국 뉴욕에 사는 장모(72·남)씨였다.

지난 10월 중순 작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육필 편지에서 주인공 장씨는 자신은 직장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며 50년 전 사연을 소개했다. 장씨는 이 2000달러를 50년 전 얻어 먹은 홍합탕 한 그릇의 보답 이라고 설명했다.

“존경하는 신촌파출소 소장님께”로 시작되는 편지에 따르면 장 씨는 1970년대 중반 강원도 농촌에서 서울로 와 신촌 근처에 살던 고학생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장 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중 신촌시장 뒷골목에서 홍합을 파는 아주머니 상인들과 마주쳤다. 장 씨는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홍합을 한 그릇 먹을 수 있겠느냐”며 “돈은 내일 가져다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 상인들 가운데 한 아주머니가 그에게 선뜻 따뜻한 홍합 탕 한 그릇을 내주었다. 하지만 당시 사정이 좋지 않던 장 씨는 다음날에도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 다음날이라고 제게 돈이 있었겠습니까? 장씨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후 장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는데 처음부터 뉴욕에 정착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은퇴할 때가 됐지만 당시 내지 못한 홍합 값이 마음에 걸려 줄곧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한다.

장씨는 편지에서 “지난 50년간 친절하셨던 그 아주머니에게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며 “이제 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해가면서 너무 늦었지만 어떻게든 아주머니의 선행에 보답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 씨는 편지에 수표와 함께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너무 작은 액수라 부끄럽지만 그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속죄의 심정으로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편지를 전달받은 신촌 파출소, 실제로는 지구대로 격상돼 있었다. 아무튼 경찰은 장 씨의 요청에 따라 2000달러를 환전한 226만6436원을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마봄협의체)에 기부했다. 마봄협의체는 지역 내 기초생활수급자와 노인, 장애인, 1인 가구 등에게 식품과 생활필수품을 전달하는 서대문구 산하 단체다.

황영식 신촌지구대장은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가장 어려운 분들에게 연말에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어려운 시기에 이런 기부문화가 더욱 퍼져 많은 분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훈훈한 미담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의 댓글도 요즘 세태에서는 이례적으로 훈훈함 일색이었다. 더러 대장동 50억 클럽에 빗대 정치인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상기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거짓되었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 이 시대 한국에는 사라진 마음 그 마음을 보게돼 아주 마음이 따뜻해 진다고 했다.

정말 바르게 사시는 분의 따뜻한 소식이다. 마음의 빚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그 동안 얼마나 가시에 찔리듯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혔을까 하는 공감이 갑니다. 부디 이 성금을 옳바르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십시오. 국민들 중에는 정신대 문제와 관련 모 의원 트라우마가 있어서 조심 스럽습니다. 댓글들이다.

한 네티즌은 장씨가 강원도 출신이라고 밝힌것에 대해 강원도인으로서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뉴욕 동포로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에게든 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세밑이면 생각나는 고마운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우리의 이웃 장선생 어르신 처럼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부끄러워 하는 그런 수오지심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는 측은지심을 잃지 않는 사람의 도리를 되 찾는 것이야 말로 펜데믹으로 얼어붙은 이 세상을 녹이는 길이라는 생각 다시 함께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