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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칼럼

강남중 기자

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말과 전망

우크라이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이 러시아를 여행 경보 최고 단계인 4단계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했다. 이 여행 경보 상향은 국무부가 우크라이나 주재 미 대사관 직원의 가족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며 함께 나왔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정부가 동유럽과 발트해 연안 NATO 회원국에 지상군을 포함한 병력 증파를 구체적으로 예고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군사 충돌 임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이 짙어지고 있는 이유는 알려진대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움직임과, 이를 막고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향력 아래 두려는 러시아와의 갈등 때문이다. 또 친 러시아계 반군이 독립을 원한다며 내전을 일으킨 '돈바스 지역'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9월 우크라이나가 자국에서 나토와 연합 군사훈련을 벌인 이후 본격화됐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는 이 시기에 이런 도발을 하고 있는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줄곳 서구 사회가 1990년대 우리에게 동유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뻔뻔하게 5번이나 자신들을 속였다며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하라는 게 왜 협박이 되는가라고 강변하고 있다.

푸틴이 언급한 약속은 지난 1990년 9월 동‧서독 통일 협정, 이른바 ‘2+4’ 협정이다. 당시 동독 내 소련군이 철수하는 조건으로 동유럽으로의 나토 확장 금지를 약속받았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그러나 1991년 소련이 붕괴된 후 나토는 1999년 폴란드‧체코‧헝가리를 끌어들였고, 2004년에는 러시아와 국토를 맞대고 있는 발트 3국을 비롯해 루마니아‧불가리아‧슬로바키아까지 대거 가입시켰다. 러시아의 입장에선 이미 동진 약속을 저버린 ‘믿지 못할 서방’이 마지막 완충 지대인 우크라이나까지 넘보고 있는 셈이다. 그가 “캐나다 혹은 멕시코에 러시아가 로켓을 가져다 놓는다면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라며 반문하는 이유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고대 러시아의 수도가 키예프였던 데서 알 수 있듯, 지금도 많은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를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키예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다. 러시아가 지난 2014년 강제합병한 크림반도도 1954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러시아 땅이었던 것을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우크라이나에 이양한 역사가 있다.

푸틴 대통령의 강경 행보에는 전략적 경제적 계산도 깔려있다. 올해 이미 600% 이상 오른 천연가스 값이 그의 무기다. 유럽에서 사용되는 천연가스의 약 40%는 러시아가 공급하는 만큼 가스관 공급 중단고려 선언 만으로도 당일 유럽의 가스 가격을 30% 폭등시킬 만큼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서유럽이 바람과 일조량까지 부족해지며 신재생 에너지 생산이 급감한 지금이 러시아로선 이를 무기로 유럽에 대한 영향력 넓히기에 최적기다. 특히 16년 간 재임한 앙겔라 메르켈 행정부 이후 신임 총리가 집권을 시작한 독일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22년까지 완전한 탈핵을 준비하는 독일은 천연가스 가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적 협상을 염두 하면서 우크라이나 주변 나토 회원국에 대한 미군 추가 파병은 최후의 카드로 남겨뒀었는데 조만간 미군 증파 규모와 범위를 결정하기로 한 것은 제재 경고만으로는 러시아를 막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되기도 하면 강력한 마지막 압박으로도 여겨진다. 실제 국무부 관계자는 23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자, 가장 바꾸고 싶은 사건”이라고 꼽았던 푸틴 대통령은 지난 12일 러시아 제헌절을 맞아 국영방송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 “소련 붕괴 이후 때론 달빛을 보며 택시를 몰았다. 솔직히 이 일을 언급하는 것은 불쾌하지만, 불행히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며 ‘강한 러시아’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고 요즘 러시아인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앞서 크림반도 강제합병이 있었던 2014년 푸틴의 지지율은 88%로 최고치를 찍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러시아군이 한 명이라도 우크라이나에 진격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신속하고 혹독한 연합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이 당장 수일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진격에 나서진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밀월관계에 든 중국의 동계 올림픽도 그 한 이유로 꼽힌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러시아-미국 협약 초안의 자국 주장을 공개했는데, 여기엔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금지 외에도 동유럽, 캅카스, 중앙아시아에서 나토군은 어떤 군사 활동도 하지 말라는 요구가 담겼다. 서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사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이같이 무리한 요구를 건 협상을 길게 가져가려는 것으로 파악 되면서 푸틴이 현 사태를 체스 게임에서 무승부로 끌고 가는 ‘스테일 메이트’(stalemate) 상태로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테일 메이트는 체스에서 양측 모두 수가 막혀 승자가 가려지지 않아 무승부로 끝내는 경기를 말한다. 실제로 푸틴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인데 이왕 놓친다 하더라도 현재 긴장 국면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손해도 아니다. 그가 적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어쨌든 푸틴이 체스 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언제든 화약고가 터지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