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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PDSO, 강사



나를 본받으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얼핏 생각하면 바울이 무척 교만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본받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물론 바울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한 데에는 그가 먼저 자락을 깔아놓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조차도 얼마나 교만스러운 말인지 모릅니다. 감히 스스로 예수님을 본받는 자라고 자처할 수 있다니 조금은 시건방지게 들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문맥을 따라 행간의 뜻을 짚어본다면, 사실상 바울은 “혹 도움이 된다면 나를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본받으면 좋겠다”는 절실한 심정의 일단을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은 소위 ‘인의 장벽’에 막혀 정작 보여야 할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만 크게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담임목사가 너무 크게 보인 나머지 예수님은 목사의 벽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는 사례를 자주 대하게 됩니다. 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신앙은 결코 그런 경우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주님을 핍박했던 과거의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스스로 ‘죄인의 괴수’요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겸손하게 고백하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바울은 늘 빚진 자의 심정으로 부채감을 안고 항상 낮은 자세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매사에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애썼습니다. 특히 고난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십자가를 대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그가 100% 완벽하게 예수님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틈만 나면 자기를 흠집내려고 안달하는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을 의식하면서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리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린도전서 4:4)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서는 양심상 거리낌이 없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것 같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가 10년 정도에 걸쳐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틴어:De Imitatione Christi)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토마스의 영적 고백이자 하나님과의 대화 기록이며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위한 주제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경건훈련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며, 어거스틴의 『고백록』그리고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함께 기독교 3대 고전으로 뽑히기도 할 만큼 기독교 문학의 압권입니다. 이 책이 마틴 루터, 존 웨슬리, 윌슨 토저, 존 스토트, 존 뉴턴, 유진 피터슨 등 영적 거장들이 한결같이 극찬한 것을 보면 기독교인의 지대한 관심사가 예수님을 본받는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회중교회의 목사요 작가였던 찰스 쉘던(Charles M. Sheldon)이 써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In His Steps: What Would Jesus Do?)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우리의 실존을 뒤흔드는 이 강력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담임목사가 ‘예수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한 청년이 찾아와 취업을 부탁하자 목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푸대접하여 돌려보냈다. 주일에 설교가 끝나자 전에 왔던 바로 그 청년이 교인들 앞에 서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라고 외치고 죽는다. 이때 목사는 청년의 죽음 앞에 자기가 전에 푸대접했던 것을 회개하고 “만약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자문해보았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바로 이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교인들이 크게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이 교회의 표어가 되었으며, 교인들은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이 널리 읽히면서 이 취지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그룹들이 생겨났으며,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What Would Jesus Do?’의 이니셜인 WWJD라는 글자나 디자인이 들어간 팔찌나 티셔츠가 제작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예수님의 삶의 스타일(life style)을 본받으려는 마음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말씀을 통해서 교훈하셨지만 이에 못지않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심으로써 교훈하시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세족식에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으로 존경하고 흠모하며 닮았으면 하는 모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 중에는 링컨 대통령이 그런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예인들도 평소 마음에 두고 있는 이상형이 있어서 나름 연구하고 모방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훌쩍 닮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설 『큰 바위 얼굴』은 이러한 현상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 명작입니다. 물론 모방자살 내지는 동조자살을 조장하는 ‘베르테르 효과’ 같은 것들은 당연히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표로 삼아야 할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의 평생과제는 성화인데, 성화의 방법 가운데 강력하게 추천해야 할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편지가 되고 향기가 되어 나를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뿜어지고 나를 통해 예수님의 사연을 읽을 수 있도록 살아감으로써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증거되도록 힘쓰는 것이 크리스천의 사명입니다.

(고린도후서 2:15, 3:3)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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